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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공포심에도 개성이 있다

중앙일보 2015.06.12 00:35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사람마다 ‘경계의 수위’가 다르다. 공동주택의 현관문만 봐도 그렇다. 전자도어록 하나 없이 손잡이 잠금 장치로만 버티는 집이 있는가 하면, 첨단도어록 두 개에 수동보조키까지 장착된 ‘안전가옥’도 있다.



 메르스 비상에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 팔리지만 안 쓴 사람도 많다. 마스크를 쓴 이들도 때와 장소에 따라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해서 착용률에 편차가 있다.



 경계심의 차이는 가족 간에도 나타난다. 그래서 부부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이런 패턴이다.



 “그렇게 챙겨주는데도 도대체 왜 마스크를 안 쓰는 거야?” 경계 수위가 높은 아내가 화를 낸다. 장례식 문상도 가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진다. 경계 수위가 낮은 남편은 언성을 높인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없어서 돌아다니느냐”고. 듣고 있던 딸이 중재(?)에 나선다. “아빠는 내가 메르스 걸리면 좋겠어?”



 게임 오버. 남편은 뉴스에서 본 몇 가지 과학적 반론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음에도 꾹 삼킨다. 마스크를 쓴 채 출근하고, 문상 대신 야근을 택한다. 집을 나서자마자 마스크는 양복 주머니로 들어가고, 야근 장소가 장례식장일지언정 그렇게 가정의 평화가 유지된다.



 범죄나 전염병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남녀노소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자녀가 있느냐 없느냐도 변수가 된다. 타고난 건강 체질인지, 늘 골골대는 약골인지도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격투기를 배운 유단자와 연약한 소녀가 느끼는 범죄에 대한 공포심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그들 모두가 국민이란 이름으로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리고 메르스 사태를 맞았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공포심을 표준화하려 했다. 마치 정해진 등급이 있는 것처럼. 공포 완화에 가장 효과적인 정확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경계 수위 높은 시민들을 훈계했다.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라”고. 메르스 발병 이후 정부가 무책임을 넘어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렇듯 ‘공포심의 개성(個性)’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겁 많은 국민은 한순간에 바보 취급을 당했다. 잘못된 정보와 유언비어는 오히려 꼼꼼한 그들에 의해 걸러지는데도 말이다. 메르스 공포가 분노로 변한 이유다.



 시민의 개성을 몰각하고 대책도 없이 아는 척한 정부는 다시 관광수지 적자와 경제 위기를 얘기하고 있다. 관광수지를 위해 마스크를 벗으란 말인가.



 안 그래도 걱정 많은 국민에게 그런 시름까지 떠안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이런 역발상으로 이참에 메르스 이후까지 준비했으면 한다.



 ‘이 나라 대한민국엔 공기감염이 안 되는 바이러스에도 마스크가 품절될 정도로 조심성 많은 시민들이 산다. 정부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니, 이 나라 병원과 음식점은 얼마나 깨끗하겠는가. 백화점과 놀이공원은 또 얼마나 안전하겠는가.’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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