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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의 시시각각] 의료한류? 병원감염은 후진국

중앙일보 2015.06.12 00:35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철근
논설위원
“올해 2월에 홍콩에서 수퍼박테리아가 출현했는데 우리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죠?”



 “국내에도 나타났는데요. 한 병원에서 일본 교수에게 검체를 보내 확인까지 받았어요.”



 1999년 6월 항생제 남용 문제를 취재하러 만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깜짝 놀랄 사실을 털어놨다. 가장 발전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도 듣지 않는 황색포도상구균(VRSA)이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것이다. 도쿄 특파원에게 부탁해 세계 최초로 VRSA를 발견한 일본 준텐도 의대 히라마쓰 게이치 교수에게 사실을 확인했다. 히라마쓰 교수 는 항생제 개발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므로 일단 병원 감염을 막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병원 감염 관리 실태를 제보한 한 종합병원 임상병리사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수퍼박테리아(VRSA)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지만 세균 검사를 하는 임상병리사들은 대부분의 대형 병원에 이미 퍼졌을 것이라고 얘기해요. 이번에 검출한 병원은 상당한 실력이 있는 거고요. 아마 대부분의 병원은 검사할 능력도 안 될걸요.”



 하지만 우리 보건 당국의 대응은 한심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책을 묻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물어보라”고 떠넘겼다. 식약처 관계자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이미 기사에 나온 병원 이름을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16년이 흘러 송재훈 과장은 삼성서울병원장이 됐다. 감염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그는 지금 병원 감염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병원에서 감염된 메르스 환자는 첫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 감염자 수를 넘어섰다.



 사실 송 원장은 속으로 억울해할는지 모른다. 국내 어느 병원보다 병원 감염을 막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은 2017년 통원진료센터를 설립,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의 동선을 분리할 계획이다. 병원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송 원장은 취임 후 응급실 시설을 개선하는 데만 100억원 넘게 투자했다. 의사 가운, 간호사복, 환자복도 방균 효과가 높은 소재로 바꿨다. 손을 씻는 정도를 매일 체크해 우수 직원에겐 갤럭시탭 등을 포상했다. 그 결과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발생밀도가 4년 전의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감염에 대한 의료진의 능력·시설·시스템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이다. 삼성병원은 3개 병원을 전전할 때까지 진단하지 못했던 메르스 첫 환자를 걸러냈다. 그런데 수퍼보균자인 14번 환자를 놓치는 바람에 2차 유행의 온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복기(復棋)해 보자. 과연 삼성병원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14번 환자가 삼성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날짜는 5월 27일이다. 첫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 무려 7일이나 흘렀을 때다. 하지만 삼성병원조차 14번 환자가 메르스 발원지인 평택성모병원을 다녀간 사실을 놓쳤다. 질병관리본부가 신속한 역학조사를 통해 병원 간만이라도 정보를 공유하게 했더라면 이처럼 허망하게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학조사관은 3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90%는 공중보건의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등 전염병이 터질 때마다 방역 전문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때뿐이다.



 메르스 전파의 허브 역할을 한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응급실을 보자. 한마디로 ‘도떼기시장’ 같다.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진 사람부터 홍역에 걸린 아기까지 뒤엉켜 있다. 겨우 병상을 얻어 입원실로 올라가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비좁은 6인실에 환자·가족·간병인 등 10여 명이 몰려 있다.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민간 병원이 투자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싼 비용에 우수한 의료진. 한국의 의료는 세계 수준이다. 그러나 병원 감염에선 후진적이다. 수퍼박테리아 신고건수는 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환자가 숨지는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 병원의 병원 감염 실태를 조사하고 인프라를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메르스가 물러가도 감염병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국민을 지킬 책임은 국가에 있다.



정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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