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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노무현의 검찰, 박근혜의 검찰

중앙일보 2015.06.11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고 9일 귀가했다. ‘친박’ 핵심 중 한 명인 그에게는 대선자금 등 2억원 수수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청사에 들어서는 홍 의원 모습을 보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대선자금 수사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검찰 취재를 담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던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대검 중수부에 불려와 조사를 받고 있던 시간에 검찰 핵심 간부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중앙일보 기사DB를 찾아보니 2003년 12월 11일이다. 이 간부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불쑥 물었다.



 “이광재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아직 결심을 못한 것 같았다.



 “(불법자금)1억 말고 더 나온 게 있나요?”



 “아니, 돈 더 나온 건 아직 없지.”



 “그렇다면 오버(over) 같은데요.”



 “오보라고?”



 “오버요, 오버. 오보가 아니고 오버.”



 “아, 오버…. 국회서 위증한 것도 있긴 한데.”



 “그래도 오버 같은데요? 누가 국회에서 ‘나 돈 받았다’고 말하겠어요.”



 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구속 수사를 하고 싶다는 속내가 읽혔다. 내 말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 전 실장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몇 시간 뒤 이번엔 ‘왼팔’ 안희정 충남지사가 불려 나왔다. 검찰은 내리 사흘을 조사하더니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판사의 구속 여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또 다른 검찰 간부와 함께 있었다. 그는 초조해 보였다. 그때 법원을 담당하는 후배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안 지사에 대한 영장이 발부됐다는 내용이었다. 그 간부는 반색을 하더니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전화 보고를 했다.



 “총장님, 영장 발부됐습니다. 예, 예. 차질 없이 마무리 하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지만 당시 검찰은 대통령의 양팔을 비틀다 못해 아예 뽑아낼 태세였다. 검찰이 이때만큼 국민의 성원을 받은 적이 또 있나 싶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도마에 오른 사람이 대통령 측근들이라는 점에선 그때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판이하다. 수사의 단초가 다르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수사가 곧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래도 개운치는 않다. 그가 목숨을 끊기 직전 남긴 ‘고발 메모’에 나온 이름을 순서대로 보면 1.허태열 2.홍문종 3.유정복 4.홍준표 5.부산시장 6.김기춘 7.이병기 8.이완구다.



 이 중 비주류 검사 출신인 4번과 경찰 출신인 8번만 집중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나머지 1·2·3·5·6·7번은 친박 핵심 인사다. 성 전 회장이 세상과 작별을 앞두고 미운 사람들을 해코지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돈 준 사람과 섞어 적은 것일까.



 이 괴이한 상황에 검찰이 답을 내놓지 못하면 정권의 사랑은 받을지 몰라도 국민의 지지는 얻기 어려울 거다.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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