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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판단력 마비시키는 ‘매몰비용’ 효과

중앙선데이 2015.06.07 03:05 430호 29면 지면보기
사람들은 이미 지불한 돈이 아까워 종종 무리한 행동을 한다. 컨디션이 최악임에도 구매한 티켓이 아까워 공연장으로 향하거나, 몸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회비가 아까워 헬스클럽에 가기도 한다. 이른바 ‘본전’ 생각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만약 공짜 티켓, 무료 헬스클럽이었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 발생한 비용에 얽매여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현상을 ‘매몰비용 효과’라 한다.

합리적 판단은 미래의 비용과 편익만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 발생한 매몰비용이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로 ‘콩코드 오류’가 있다. 콩코드 비행기는 1962년 개발 초기부터 한정된 탑승인원, 과다한 연료비 등으로 사업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미 막대한 개발비가 투자된 상황에서 의사결정자들은 사업추진을 고집하다가 2000년도에 들어서야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매몰비용 효과는 콩코드 개발과 같은 대규모 사업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빈번하다. 남은 음식이 아까워 억지로 먹다가 체하는 것도 일종의 매몰비용 효과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보유주식이 매수한 가격 이하로 떨어졌을 때 매도를 주저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식을 계속 지니면 언젠가 다시 오를 수 있지만, 매도 즉시 손실이 확정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우리 뇌는 매몰비용을 금전적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심리적 손실로도 간주한다. 이 때문에 매몰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추가적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려 한다. 당신이 최고경영자(CEO)로 재직중인 제약회사에서 현재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 중이라 가정해 보자. 그러나 최근 경쟁사가 유사한 진통제를 먼저 출시하였다. 경쟁제품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당신이 진통제 개발을 지속할 경우 2억 5000만원의 수익을 올릴 확률은 10%에 불과한 반면, 5000만원을 손해 볼 확률은 90%다. 단, 진통제 개발을 마무리하려면 기존 투자비 외에 추가로 5000만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아래 두 가지 상황을 보자.

A. 기존 투자비가 100만원
B. 기존 투자비가 5000만원

A와 B는 동일한 시나리오에서 기존 투자비(매몰비용)에만 차이가 있다. A상황은 매몰비용이 1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비관적 결과가 예측되면 사업을 멈추기 쉽다. 그러나 매몰비용이 A에 비해 50배나 높은 B상황에서는 사업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한 연구에 의하면 기업 CEO 다수가 B상황에서도 계속 투자하겠다고 응답하였다. 사업중단을 선언하면 이미 발생한 금전적 손실과 함께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심리적 손실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수익확률이 10%에 불과한, 바꾸어 말하면 손실확률이 90%인 사업에 추가로 5000만원을 투자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매몰비용 효과는 배가 불러도 남은 음식이 아까워 억지로 먹는 일상적 판단부터 현저하게 비관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사업투자를 지속하는 경영판단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 매몰비용과 마주하는 순간, 이성도 어찌하지 못하는 강력한 손실회피 감정으로 인해 합리적 판단까지 매몰되기 쉽다. 매몰비용 효과는 본질적으로 과거 판단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한 미래는 계속 과거의 옷을 입는다. 지나버린 어제를 무시해야 온전히 내일을 위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다. 미래는 언제나 새 옷이 필요하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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