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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뒤질 땐 한심한 생각 … 입장 바뀌니 모멸감 느껴

중앙선데이 2015.06.07 01:21 430호 11면 지면보기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른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우원식·김광진·박범계 의원 등 이른바 당내 ‘저격수’들을 전진 배치했다. 새누리당은 이에 맞서 권성동·김제식·김회선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을 청문위원으로 선임하면서 ‘강(强) 대 강(强)’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정작 총리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검증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8일 황교안 청문회 … 여야 저격수가 말하는 인사청문회

 요즘 ‘청문회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행 16년째를 맞은 인사청문회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앙SUNDAY는 지난 3~4일 국회의 역대 청문회에서 당의 ‘공격수’ 역할을 맡아 활약했던 여야 정치인 4명을 만나 국회 인사청문회의 문제와 개선방안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도덕성 문제와 의혹 제기에만 치우쳐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고는 공직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을 꼼꼼히 따져 보려면 정부의 사전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10일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캐다 보면 뭔가 나와 정책검증엔 소홀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후보자님! 왜 이렇게 후진 거짓말을 하세요. 거짓말 3탄입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어떤 분들이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 후보님의 성품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2월 이완구 총리 후보자 청문회 당시 여야 청문위원 간에 벌어진 설전이다. 이처럼 공직 후보자에 대해 야당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여당은 방어에 전념하는 청문회 풍경은 2000년 인사청문제도 도입 이후 매번 반복되고 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청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도 이런 현실을 인정했다. 그는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좌관을 동원해 후보자의 영수증이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밤새 뒤지면서 국회의원으로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 후보 청문회 때도 워낙 사전정보가 없다 보니 서초동에 떠도는 풍문을 확인하느라 돈 문제를 파고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뒤지다 보면 쓸 만한 게 나오고 그것 때문에 낙마한 사람이 많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정책 검증을 소홀히 하고 금전 비리 등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검사 출신으로 황교안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을 맡은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도 “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공세가 워낙 드세다 보니 어느새 여당 청문위원으로서 검증의 주체가 아니라 방어의 주체처럼 대응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오락가락 도덕성 기준도 논란
인사청문회 때마다 불거지는 고무줄 잣대도 논란거리다.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과 관련한 부적격 기준이 정치 상황에 따라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6년 교육부총리 후보에 지명됐다가 논문 표절 논란이 문제가 되면서 취임 직후 물러났다. 당시 야당 위원으로 청문회에 참여했던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은 “당시만 해도 논문 표절 의혹이 처음이라 교육부총리 될 사람이 논문 표절이 무슨 말이냐며 크게 문제 삼는 분위기였다”면서도 “이제는 하도 많이 나오니까 논문 표절 정도는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청문회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으려면 국회가 나서 논문 표절, 위장 전입 등에 대해 엄격하게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의 대표적인 청문회 저격수로 꼽혀 온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도덕성 기준을 묻자 의외로 현실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이른바 ‘청문회 필수 4대 과목’으로 불리는 병역 비리, 위장 전입, 탈세, 부동산 투기 등을 전부 따지려 하다 보면 50세 이상 된 인사들 중에서 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이 사실상 없다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눈높이를 조금은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2009년 천성관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스폰서 의혹 등을 제기해 후보자 낙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천 후보자의 부인이 고액의 쇼핑을 하는 모 백화점 VIP 회원이라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보좌진이 백화점 주차장에 잠복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18대 국회 원내대표 시절에도 청문회를 진두지휘하면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을 줄줄이 낙마시켰다. 그는 ‘청문회 저격수’라는 별명에 대해 “이번 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도 당에서 나서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며 “이제는 학업(청문회)에 뜻이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비서실장 때 당시 총리 후보로 거론됐던 102명을 대상으로 사전검증을 한 적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병역, 탈세,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등 네 가지를 검증해 보니까 딱 한 명이 남더라”며 “앞으로 인사청문제도가 발전할수록 젊은 공직자들을 투명하게 살도록 이끄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보자를 향해 호통을 치고 윽박지르는 모습도 인사청문회의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이로 인해 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기피하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에 지명돼 청문회를 받았던 주호영 의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17대 국회에서만 청문회를 19번이나 참여했는데 막상 청문회를 받는 대상으로 입장이 바뀌어 보니 정말 답답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을 막 부풀려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모멸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거 없는 의혹만 제기되면 설사 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국민 눈에는 이상한 사람이 장관을 맡은 것처럼 낙인찍히고 있다”며 “진위가 불분명한 주장의 공개 여부를 사전에 거르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검증자료 없어 원점서 시작
의원들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 청문회가 아닌 정책 검증 청문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사전검증 시스템이 더욱 강화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윤석 의원은 “청와대가 후보자에 대해 사전검증으로 무엇을 했고, 결과는 어땠는지,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를 국회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 검증을 한다”며 “그런 게 비효율이고 국가적 낭비다. 청문위원회의 의결을 통해서라도 사전검증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후보의 장점과 내정 이유를 소개한다면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성도 강화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회찬 전 대표도 “정부가 사전검증을 부실하게 한 상태에서 국회 청문회로 넘기다 보니까 정작 (정책 검증 등의) 고급 요리를 만들어 내야 할 국회가 돌만 고르고 앉아 있는 것”이라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약점만을 노리는 저격수가 활약하는 삼류정치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후보자의 정보를 감추려고 하고 국회는 캐려고 덤비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오히려 정부가 조사할 만큼 다했다는 걸 보여 주고, 국회는 이를 믿고 정책 노선을 따지는 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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