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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신 ‘?+?=3’ 묻는 쿠바인 … 경제 제재 뒤 사고의 전환

중앙선데이 2015.06.07 01:41 430호 15면 지면보기
1 고난의 ‘특별 시기’에도 교복만은 깨끗하게 입고 다녔다는 쿠바의 어린 학생들. 경쟁보다 협력을, 그리고 자발적인 열정을 배운다.
2 쿠바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만든 수륙양용 ‘카보트’. 당국의 단속에 발각돼 끌려왔다. 3 쿠바의 메카니코들은 예술가이자 마술사이다. 사진=정승구
“일자 드라이버가 없으면 칼 하나로도 충분해요. 망치가 없으면 돌로도 돼요. 한 달이면 그 어떤 고물차도 레이스카로 바꿔 놓는다니까요. 한 달을 못 기다린다고요? 그럼 3주에도 가능해요. 가솔린 값이 부담되면 디젤로, 디젤도 싫으면 물로 움직이는 엔진을 만들어줄게요.”

쿠바에서 본 쿠바의 미래 <7>

엔진 오일을 갈아주는 정비사의 허풍은 음악적이었다. 쿠바에서 자동차를 고치는 메카니코(mecánico)가 되려면 창의력과 손재주는 기본이고 ‘말발’이 세야 한다. 쿠바의 메카니코들은 단순한 수리공이나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다. 아니 마술사에 가깝다. 반세기가 넘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에 만들어진 ‘양키 탱크’들이 쿠바의 거리를 아무 문제없이 달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쿠바의 메카니코들을 보면 정답이 하나가 아닌 질문을 던졌을 때 비로소 열린 사고로 인한 혁신적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2=?’이 아닌 ‘?+?=3’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주어진 자원과 여건에서 창의적으로 작업한다. 소련산 자동차 라다(Lada)의 피스톤을 쉐비(Chevy·쉐보레의 애칭)에 부착하고, 가스히터의 버너를 활용해 우랄(Ural) 오토바이의 카뷰레터로 변형시킨다. 이뿐만 아니다. 잔디 깎는 기계의 엔진을 활용해 스쿠터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런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소련이 91년에 붕괴하자 쿠바의 수출입은 5분의 1로 줄고 국내총생산(GDP)은 3분의 2로 줄었다. 소련으로부터의 원유 공급이 중단됐고 수도 아바나에서도 전기와 물이 종종 끊겼다. 경제 위기를 넘어 대재앙이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인민들에게 ‘특별 시기(período especial)’를 선포했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쿠바와 북한의 멸망을 확신하며 기다렸다.

각종 캔을 재활용해 만든 비행기와 자동차 장난감. ‘궁하면 통한다’라는 ‘레솔베르’ 정신이 담겨 있다.
‘레솔베르(resolver)’는 쿠바가 ‘특별 시기’에 외쳤던 구호이자 삶의 방식이다. 직역하면 ‘해결’이라는 뜻이지만 ‘특별 시기’를 견뎌낸 쿠바인들에게 이 단어는 다양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 얼핏 들으면 같은 시기 북한이 외쳤던 ‘자력 갱생’과 유사하게 들리지만 둘은 확연히 다르다. ‘자력’에는 왠지 미련한 고집과 열등감에서 나온 자존심이 묻어 있지만 ‘레솔베르’는 훨씬 실용적이면서 긍정적이고 창의적이다. 여기엔 쿠바가 ‘특별 시기’를 이겨낸 저력과 자부심이 들어 있다. 쿠바인들은 카스트로 형제의 현명하고 유연한 지도력, 따뜻한 공동체의식과 우고 차베스의 지원으로 그 고난의 시기를 ‘레솔베르’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제적 따돌림 시대에도 아이들에겐 투자
“그때는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어. 돈 몇 푼 때문에 치즈 대신 콘돔을 잘라 녹여서 뿌린 피자를 팔기도 했다니까. 무슨 저주받은 시대 같았어. 쓰레기는 곳곳에 쌓여 있었고, 뒷골목들은 썩는 냄새로 진동해서 거대한 변기 같았지. 그래도 우리 식구는 좀 편안한 동네에 거주했지만 상하수도가 부실한 동네들에서는 공중화장실을 나눠 써야 했다고.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서는 이가 득실거렸고. 악몽이었지.”

민박집 주인 마그다가 회상하는 암울한 ‘특별 시기’의 기억을 듣고 있던 내 친구 하비에는 유머를 섞어 이보다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특별 시기’ 덕분에 우리는 건강해졌어. 다이어트가 필요 없게 됐고 당뇨 같은 병도 사라졌지. 그보다 중요한 건 정부로 부터 무상으로 받던 모든 것이 끊겨 우리는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했다는 거야.”

쿠바인들은 굶주림의 상처를 회상하는 것 자체가 힘든지 ‘특별 시기’를 떠올리면 하나같이 눈물을 글썽였다. 하비에 역시 경쾌하게 얘기했지만 잊고 있던 고통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지 눈시울을 닦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하비에의 말대로 쿠바인들은 창의력을 발휘했다. 살충제 대신 나비를 쓰고, 마취제가 모자란 병원에서는 전통 대체 의술과 중국 침술을 활용해 수술을 했다. 또 ‘특별 시기’를 계기로 생명공학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해서 지적재산권과 무관한 소위 ‘짝퉁 약’을 수출해 외화벌이에 기여했다. 심지어 쿠바를 탈출하는 ‘보트피플’조차 창의력을 발휘해 007 영화에나 나올 법한 수륙양용 카보트를 직접 만들어냈다.

세계의 많은 이들은 그 시절에 쿠바가 어떻게 붕괴하지 않았는지를 궁금해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 질문의 답을 하비에의 노모인 클라라가 가르쳐줬다.

“당시엔 휘발유가 없으니까 자전거를 이용해 식량을 배급소로 날랐다네. 몇 시간씩 그 땡볕에서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보급품을 가득 싣고 자전거로 쉴 새 없이 오가는 청년들이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지. 실신할 때까지 식량을 나르는 그 청년들에게서 우리는 성인(聖人)의 모습을 봤어. 그 ‘성인’들 덕에 우리도 기운을 잃지 않았을 거야. 그거 아나? 그 시절 모든 것이 지저분했지만 아이들 교복만은 깨끗했다네. 누구나 아이들에게는 품위와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었으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우린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지.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소련이 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즐거움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그러니까 어떻게 상황에 ‘반응’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몫이라는 걸 말이야. 고통과 고난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선택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자유란 말일세. 그 자유야말로 우리가 혁명을 지키고 또 우리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쿠바인들에게 쿠바 혁명이란 외세가 심은 이념이 아닌, 인민들이 창의적으로, 자발적으로 일궈낸 사회이자 문화이자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특별 시기’를 이겨낸 쿠바의 저력은 바로 쿠바 인민들의 ‘자유’였던 것이다.

자발적 열정에 의존하는 쿠바 정책
흔히 쿠바 혁명은 보건복지와 교육, 스포츠를 향상시켰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쿠바인은 이 셋을 얻는 대가로 삼시 세끼가 부실해졌다는 농담을 자조적으로 덧붙인다.

쿠바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야구배구와 권투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배출해낸다. 역대 팬암게임 메달 수를 집계해보면 미국 다음이 쿠바다. 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와 베네수엘라가 그 뒤를 따른다. 이는 쿠바의 인구와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실로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다. 역대 여름올림픽 성적 역시 놀랍다. ‘특별 시기’였던 92년부터 2000년까지 쿠바는 메달 순위 10위권에 꾸준히 진입했다.

혁명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스포츠 정책을 우선순위에 두고 모든 인민이 스포츠를 부담 없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개개인의 재능과 열정만 있다면 쿠바에서는 누구나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우리 체육인은 혁명의 자녀들이다”라는 피델의 말처럼 스포츠는 쿠바 혁명의 선전도구이기도 했다.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국가 이미지 개선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고, 기량이 뛰어난 운동선수들을 통해 쿠바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이런 의도만 보면 소련과 동구권, 한국과 같은 국가 주도의 스포츠 엘리트 양성 정책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쿠바의 정책은 철학 자체가 달랐다.

국가 주도형 스포츠 정책은 동기 부여를 위해 다양한 혜택을 준다. 이와 달리 쿠바의 정책은 개개인의 자발적 열정에 의존한다. 이는 단순히 쿠바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모인 이들로 혁명을 일으켜본 피델은 강제성과 자발성에서 나오는 힘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발적인 열정’이 그저 희망사항으로 들린다면 다음의 사례를 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90년대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최고의 인력을 모아 엔카르타(Encarta)라는 디지털 백과사전 사업에 착수했다. 기존의 오프라인 백과사전 회사들을 인수하고 적합한 수익 모델을 설계했다.

그런데 2001년 또 다른 형태의 디지털 백과사전이 나타났다. 거대한 자본도 조직도 없이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는 대신 신념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누구나 무료로 공유한다는 철학이었다. 여기 동의하고 재미와 의미를 느낀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지식 콘텐트를 채워나가는 사이트, 바로 위키피디아(Wikipedia)였다.

2009년 유료 서비스인 엔카르타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검색 페이지뷰에서 위키피디아가 97%에 달하는 데 비해 엔카르타는 1.2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위키피디아는 세계 5대 사이트 중 하나다. 그리고 한국어판 위키피디아가 다른 언어에 비해 내용이 턱없이 부실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시스템
‘자발적 열정’으로 성취하는 모델은 사회주의 모델도, 자본주의 모델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노예가 아니다. 누구나 꿈과 열정을 갖고 있고, 그런 잠재력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되면 놀라운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쿠바에서도 볼 수 있듯 이런 환경은 교육에서 시작된다.

쿠바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지 않고 몇몇 분야의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지도 않는다. 가치와 재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쿠바의 교육은 불필요한 경쟁보다 건설적인 협력을, 타인을 다스리는 방법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와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한다. 쿠바에서는 시장과 기업에서 쓸모 있는 ‘수동적인 인재’가 아닌, 열정적이고 ‘능동적인 인성’을 양성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체 게바라처럼 되겠다고 맹세한 아이들은 자라서 죽음을 무릅쓰고 에볼라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로 주저 없이 떠난다. 자신의 사익이 아닌 더 큰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은 분명 고귀한 존재다.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을 예우하고 존경하는 사회와, 타인의 희생으로 자신의 실익을 챙기는 사회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유아를 폭행하는 교사나 보험금을 위해 환자 몰래 담낭을 제거하는 의사가 존재하는 사회는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왜 경제적으로 기적을 이룬 나라는 기쁨을 잃었고, 경제적으로 불편한 쿠바는 행복을 누리는가. 그 답은 우리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승구 영화감독, 작가. 쿠바를 좋아한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하버드대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장편과학소설 『영원한 아이』를 썼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쓰고 연출하고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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