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으로 소설 읽기]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 우정으로 보상 받는 아이들

중앙선데이 2015.06.07 02:18 430호 24면 지면보기
폴란드의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시크릿 가든’(1993)의 한 장면. 케이트 메이버리가 메리 역을, 히든 프로우스가 콜린 역을, 앤드류 노트가 디콘 역을 맡았다. 아래 그림은 미국에서 출간된 책 속에 들어있는 삽화. [민음사 제공]
“선생님, 지난 시간 출석을 못 했는데 진도나 과제를 알 수 있을까요?” “늦게 와서 못 들었는데, 앞의 강의 내용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10>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

학생들의 질문을 받다 보면, 예전에는 ‘친구에게 물어야 될 것들’을 지금은 선생님에게 직접 묻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건 친구에게 묻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넌지시 의견을 비치면, 아이들은 사색이 된다. 수업을 함께 듣는 친한 친구가 없는 것이다.

한 학생이 며칠 결석을 해서 “아무개랑 친한 사람 없니?”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묵묵부답이다. 협동이 필요한 조별 과제를 내면 불만이 속출한다. 불만의 뿌리는 ‘나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친구는 무임승차한다’는 억울함이다. ‘함께하는 것’을 점점 싫어하고, 함께 무언가를 이룬다는 과정의 기쁨을 믿지 않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 또한 점점 혼란에 빠진다. 조는 아이나 떠드는 아이보다 더 마음 아픈 존재는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믿지 않는 아이들이다.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 ‘함께하는 것보다는 혼자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모두가 우울한 집에서 소녀가 발견한 비밀
이런 고민에 빠진 나는 소설을 통해 내 오랜 물음의 해답을 찾았다. 『소공녀』의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쓴 『비밀의 화원』은 바로 ‘함께하는 삶의 비밀스러운 기쁨’을 감동적으로 증언한다.

이 소설에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단 하나의 결핍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두 아이, 메리와 콜린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메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오직 하녀의 보살핌만 받고 자라났다. 버릇도 없고 꿈도 없고 누군가에 대한 애착도 없는 메리에게 엄청난 고난이 닥쳐온다.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오직 메리 혼자만 살아남게 된 것. 이때부터 메리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머나먼 영국 땅,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낯선 친척집에 가서 살게 된 것이다.

천애고아 메리의 후견인이 된 크레이븐은 메리보다 더 심각한 애착장애를 앓고 있다. 곱사등이라는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 우울증까지 안고 사는 크레이븐은 수백 개의 방과 엄청난 평수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행복하지 못하다. 정원에서 아내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이후, 그는 세상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

메리는 크레이븐의 저택에 살게 된 이후 ‘비밀스러운 정원’의 존재를 알게 된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아예 입구 자체를 무성한 담쟁이 덩굴 뒤에 숨겨 버린 비밀의 정원은 메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꾼 벤과 하녀 마르타의 도움으로 비밀의 화원에 얽힌 미스터리를 알게 된 메리는 마침내 무려 10년이나 버려져 있던 정원에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메리가 알게 된 또 하나의 비밀은 바로 이 집에 ‘숨겨 둔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인들조차 쉬쉬하며 ‘존재하지 않는 아이’처럼 숨겨왔던 콜린을 처음 만난 순간, 메리는 유령을 마주한 듯 깜짝 놀란다. 창백하고 바싹 마른 콜린은 한 번도 바깥 출입을 해본 적 없는, 완전한 은둔형 외톨이였던 것이다.

메리는 하녀 마르타의 동생 디콘과 함께 비밀의 화원을 멋지게 가꾸기 시작한다. 정원 가꾸기의 모든 것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만물박사 디콘은 단번에 메리를 사로잡는다. 디콘은 메리에게 꽃들의 아름다움과 봄의 눈부심과 정원 가꾸기의 희열을 가르친다. 메리는 디콘을 통해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는 자부심을, 누군가와 ‘교감하고 있다’는 희열을 느낀다.

아무것도 안돼 vs 뭐든지 해줄게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10년이나 방치하고 아들을 비밀의 방에 가둘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크레이븐을 향해, 메리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크레이븐의 아내가 나무에서 떨어지던 날, 산모는 죽고 아들은 살았다. 절망에 빠진 크레이븐은 아들이 자신처럼 곱사등이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아예 아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의 침입자 메리를 통해 버려진 화원은 생기를 찾아 가고, 그 화원에서 봄이 오는 것과 꽃이 피는 것과 나무가 움트는 것을 본 아들 콜린은 눈에 띄게 병세가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나는 곱사등이가 될 것이다’라는 강요된 공포로부터도 벗어나게 된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아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던 메리가 황폐한 정원을 눈부신 꽃들의 낙원으로 되살림으로써 스스로는 물론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콜린의 닫힌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아동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시설이나 병원에 격리된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영아기에 부모와 애착 관계를 맺지 못할 경우 이후의 삶에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게 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이는 애착의 경험을 통해 생존의 가능성과 인지 능력을 개발한다. 첫 번째 전애착 단계(pre-attachment)에서는 울음이나 미소를 통해 타인의 관심을 유도한다. 이때 아기는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잘 안기고 아무에게나 방긋거린다. 두 번째 차별화된 애착 단계(orientation with discrimination)에서는 ‘낯가림’이 시작되면서 ‘자신과 더 가깝고 친밀한 사람’을 가려낸다. 세 번째 안전기지 애착 단계(safe-base attachment)에서는 아이가 부모의 반응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부모에게 접근한다. 아이는 부모를 든든한 안전기지로 삼아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게 된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바로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다.

그런데 메리와 콜린은 아예 애착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분리불안도 겪지 않았는데, 그들이 디콘과 함께 정원에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하자 세 사람 사이에서 처음으로 이 분리불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로가 없다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 저 사람이 있어야만 내 삶이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되는 듯한 강렬한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네 번째가 바로 목표수정적 동반자관계 단계(goal-corrected partnerships)인데,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활동을 하게 된다. 엄마가 너무 바쁘면 떼를 쓰지 않고 엄마가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린다든가, 엄마가 간식을 주지 않으면 울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엄마를 조리있게 설득하는 식의 적극적인 행동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절실한 필요와 간절한 그리움의 힘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서로의 우정 속에서 발견한 콜린과 메리는 마침내 서로를 안전기지로 삼아 그 든든한 애착의 감정을 희망의 베이스캠프로 삼기 시작한다. 메리에게 좀 더 잘 보이기 위해 콜린은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몸을 튼튼히 하게 되고, 제인은 콜린에게 좀 더 따뜻한 위로를 해 주기 위해 정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게 된다.

하녀 마르타의 어머니는 육아의 달인으로서 ‘아이에게 가장 나쁜 두 가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나는 항상 무엇이든 아이 마음대로 못 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항상 무엇이든 아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뭐든지 금지하는 부모는 주눅 든 아이를 낳고, 뭐든지 허용하는 부모는 버릇없는 아이를 낳는다.

그럼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요하고 우아하며 격식 가득한 집보다는, 북적이고 떠들썩하고 애증이 교차하는 집이 아이들에게 훨씬 더 풍요로운 감성의 토양을 제공하지 않을까. 외롭고 힘들고 우울할 때마다 지친 영혼을 기댈 수 있는 저마다의 비밀스러운 안전기지가 있다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절실한 필요가 아이들의 뇌를 활성화시킨다. 간절한 그리움이 아이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물들인다. 잊을 수 없는 타인, 골치 아픈 타자가 오히려 아이들의 영혼을 훌쩍 자라게 만들 수 있다.


정여울 문학 평론가 suburbs@hanmail.net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