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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메르스 … 워킹맘이 죄인 되는 세상

중앙일보 2015.06.06 00:13 종합 2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고 란
국제부문 기자
무심한 편이다. ‘설마…’하는 태도로 35년을 살았다.



 1년 반 전부터 예민해졌다. 딸이 태어나면서다.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일 같았다. 지난해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도 그랬다. 그 광경을 TV로 지켜보면서 울었다. 산후우울증 탓도 있었겠지만 내 딸에게 생길 수도 있는 일만 같아서다.



 이번 주말 오빠네 집 근처에서 엄마 생신모임을 하기로 했다. 두 달 전 정해진 행사다. 고민이 됐다. 외식을 할 텐데 사람 많은 곳에 17개월 된 딸을 데리고 가기가 찜찜했다.



 그래도 일주일 전엔 ‘찜찜한’ 수준이었다. 며칠 전부턴 심각해졌다. 오빠가 사는 동네 근처 병원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아니지…’ 싶어 언니(오빠의 부인)에게 연락했다.



 첫째 조카가 다니는 유치원 근처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단다. 그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인근 유치원도 휴업을 했다. 언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 조카까지 둘을 모두 데리고 ‘집콕(집에 머무르면서 밖에 나오지 않는 것)’하고 있다고 했다. 언니는 전업주부다.



 2년 전이었다면 ‘괜한 호들갑’이라고 언니를 고깝게 봤을 거다. 복권 당첨 확률보다 작은 경우의 수를 들어 ‘오버’한다고. ‘시(媤)’어머니 생신상 차리기 싫어 그런다고 오해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내가 나서 주말 모임을 취소하자고 했다. ‘맘(엄마)’이라서 그랬다.



 그런데 ‘워킹’맘이다. 동네 인터넷 카페에는 어린이집에 안 보낸다는 전업주부 엄마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내 자식은 내가 지킨다’며. 반면 일하는 엄마들은 죄인 된 심정으로 아이를 등원시킨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손세정제와 마스크라도 잔뜩 주문해 놓았단다.



 그렇지 않아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워킹맘이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미안하다. 여기에 이제는, 일하느라 자식을 전염병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어린이집 학대사건으로 마음 졸였던 게 엊그제인데, 오늘은 치료약도 없다는 병에 딸이 걸리지나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



 워킹맘들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정부다. 믿고 싶다. 현실은 그러나 전염병 발원지보다도 감염 확산에 속수무책이다. 믿느니 차라리 ‘오늘도 무사히…’라고 비는 편이 나으려나.



고란 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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