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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이 무능한 정부를 어찌할꼬

중앙일보 2015.06.06 00:11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숭례문이 불타던 날을 기억한다. 초판 마감을 하고 8시반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남대문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국보 1호에 어쩌다 불을 냈나, 혀를 차면서도 금세 진화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른 저녁에, 보는 눈이 저렇게 많은데 큰일 있겠나 싶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본 광경은 그게 아니었다. 연기는 심각할 정도로 짙어졌고 이따금씩 불길이 치솟는 것도 보였다. 그날 밤 숭례문의 2층 누각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됐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을 기억한다. 출근길에 사고 소식을 들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보니 기울긴 했어도 선체의 대부분이 물 위에 있었다. 그래도 한밤중에 난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라 여겼다. 아주 먼바다도 아니어서 구조가 크게 어렵지 않겠다 생각했다. 오전 편집회의 중에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떴다. ‘그럼 그렇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안다. 그리고 그 일은 온 국민의 트라우마가 됐다.



 이제 그 국민들은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가슴에 새겨야 할 참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라는 낯선 이름의 공포보다 그 앞에서 우왕좌왕 쩔쩔매는 무능 정부가 주는 불신이 더 예리한 날을 가졌다. 숭례문과 세월호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자기 재산 하나 지킬 줄 모르는 정부는 자기 백성 목숨을 구할 능력도 없을뿐더러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씻어줄 도량은 더더욱 없었던 거다.



 세 가지 사건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정부의 무능 탓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돼버린 대표적 사례들이다.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미치광이 노인의 방화를 어찌 알고 막겠나. ‘가라앉지 않는 배(The Unsinkable)’라던 타이타닉호는 침몰선의 상징이 됐다. 낙타가 옮기는 바이러스의 한반도 상륙이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른바 ‘초동 대처’다. 이 정부가 특히 못하는 게 그건데, 원래 무능한 사람들이 약한 게 초동 대처다. 일이 터졌는데 상황 판단을 못하니 결단을 못하고, 결단을 못하니 대처가 늦고, 대처가 늦으니 해법이 늘 한 발씩 뒤처지는 거다. 앞의 두 사건은 재론하기 가슴 아프다. 감염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전염력이 약하다”, 불안한 국민들이 다 찾아보고 있는데 “병원 공개하면 혼란이 온다”, 학교와 학원들이 휴교와 휴강으로 선제적 대응을 하는데 “휴교할 필요 없다”고 뒷북을 친다.



 유일하게 뒷북이 아닌 건 “낙타와 밀접한 접촉을 피하라”는 예방법 안내다. 노숙자들이 점거한 지하도에 “노숙은 건강에 해롭다”는 벽보를 붙였던 보건복지부인지라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도 정부 얘기가 맞을 것이다(낙타도 노숙도 맞는 얘기다). 대중의 공포를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행동까지 신중해서는 안 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대처했어야 했다. 그런데 말보다 행동이 신중하니 별거 아닌 게 괴물이 되고 말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무능해서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매달린 탓이란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이 불가한 장관이었다면 당초에 쓰지 말든가 아니면 보건과 복지를 나눠 2명의 장관을 썼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통령이 평론가 아닌 책임자로 직접 나섰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공포보다 무서운 불신이 이렇게 널리 전염되진 않았을 터다.



 이제 와서 무능 정부를 욕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한마디도 안 해서는 재산 잃고 목숨 잃고 믿음마저 잃은 이 땅의 백성들이 가여워서 안 되겠다. 처칠의 말로 대신해도 되겠다. “그들은 결단력을 표방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용단을 말하면서 우유부단하며, 철석같은 결의가 있다면서 비틀거리지만, 무능한 점에서는 전능하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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