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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사용후 핵연료 관리 정책 공론화의 나아갈 길

중앙일보 2015.06.06 00:10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지난해 8월 초 세월호 사태로 모두가 침몰한 듯한 가운데 ‘원자력 딜레마’란 시평을 썼다. 딴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했는데 지금 또 꼭 그렇다. 메르스 공포 속에서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公論化) 얘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이달에 공론화 최종보고서가 나온다. 준비에만 10년이 걸린 이 공론화가 이해관계자의 관심사를 넘어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얼마나 끌었을까.



 우리 방사성 폐기물 정책이 걸어온 길은 험난했다. 1980년대 계획은 90년대까지 중저준위·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동일 부지에 건설하면서 사용후 핵연료는 최종처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89년 경북 지역 3개 후보지를 조사하다 중단되고 91년 안면도, 95년 굴업도 처분장 계획이 잇따라 백지화된다. 방폐장 부지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2003년 부안 사태에서 절정을 이룬다.



 2004년 말에는 중저준위 처분장과 고준위 중간저장시설을 따로 건설한다는 발표가 나온다. 그로써 경주가 중저준위 처분장 부지로 선정되기까지 19년 걸렸고, 다시 10년이 더 지나 올해 문을 열었다. 시설을 둘러본 국제원자력기구(IAEA) 담당국장은 “고준위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해도 괜찮을 정도로 안전성을 갖췄다”고 했다.



 우여곡절은 우리만 겪은 게 아니다. 선진국도 고준위 영구처분장 선정에서는 시행착오가 컸다. 세계 최초로 성공한 나라는 핀란드(2개 부지 4기 원자로 가동)다. 올킬루오토(Olkiluoto)의 지하 500m에 자리한 ‘온칼로(Onkalo)’는 99년 부지 선정까지 15년이 걸렸고 2020년부터 본격 운영한다. 제2주자인 스웨덴(3개 부지 10기 가동)은 더 복잡하다. 77년 법을 제정하고 부지 선정에 들어가 80년부터 85년 사이 공사를 하려다 중단된다. 92년 지방정부에 서한을 보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2009년 부지 선정, 2020년 완공 계획이다.



 스웨덴의 부지 선정을 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중저준위는 88년부터 스톡홀름 북쪽 포르스마르크(Forsmark)에서 영구처분하고, 사용후 핵연료는 85년부터 오스카르스함(Oskarshamn)에서 중간저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용후 핵연료 최종처분장은 다시 포르스마르크로 결정됐다. 그러니 중간저장시설로 이송했다가 다시 특수선박으로 세 시간 이상 해상운송을 해야 한다. 2013년 한국여기자협회의 스웨덴 시찰에 동행했던 길에 물었다. “왜 고준위 중간저장만 다른 곳에서 하면서 왔다 갔다 하게 됐나.” 답인즉 “정치인들이 그렇게 분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였다.



 독일 사례도 시행착오다. 별도 부지에 최종처분시설을 건설하려다 이송 때마다 시위에 부딪쳐 중단돼 결국 부지 내와 부지 외 저장의 두 가지 형태가 됐다. 미국(58개 부지 99기)도 순탄치 않다. 네바다주 유카산(Yucca Mt.)에 최종처분장을 건설하던 중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 예산 전액삭감으로 무산된다. 이후 블루리본위원회(Blue Ribbon Commission)가 출범됐고, 조속히 원전 부지 외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고 이송계획을 철저히 세우라는 권고가 나온다. 세계 최대 원전국가가 핵 비확산의 기수로서 재처리 없이 현재까지 원전 부지 내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 정책의 한계조건은 여럿이다. 기술적으로 미완(未完)이라 땅 속 깊이 유리시켜야 한다. 핵폐기물이냐 자원이냐 어떻게 볼 것인지도 이슈다. 자원으로 보면 재처리를 한다. 미국을 제외한 핵무기 보유국(프랑스·러시아·영국·인도·중국)과 일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40년 전 시작된 건식 파이로 공정(Pyro-processing) 연구는 계속 진행형이다. 지난 4월 가서명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안에서 사용후 핵연료 관리 연구개발 협력이 3대 중점 추진 분야로 들어간 건 잘된 일이다.



 한마디로 고난도 정책이다. 원전 31개국 중 대부분이 관망(Wait & See)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발전량 기준 세계 4위(4개 부지 23기)인 한국으로서는 그럴 처지가 못된다. 2016년부터 임시저장수조가 포화될 것이란 기존의 발표대로 대응하기엔 이미 늦었다. 조밀저장, 부지 내 이송, 신규 원전으로의 이송 등으로 포화시점을 늦춰도 2024년 포화되기 시작한다.



 워낙 풍파를 겪은 탓에 정부는 ‘국민의 공감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현 공론화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다. 1년 반 남짓 작업해서 범부처 차원의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을 터다. 후보 방안마다 장단점이 있고, 지역사회 협의가 핵심이다. 법규 개정도 필요하다. 그러니 단일 결론을 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국토가 드넓고 인구밀도가 적은 나라들과는 조건이 애당초 다르다는 점에서도 좀 더 다층적인 논의 구조가 불가피해 보인다. 국가 차원의 입체적인 공론의 장을 마련해 좀 더 소통하고 기필코 우리 사회 복합갈등 해소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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