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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맡는 것도 모자라 …‘육아 과외’ 받는 할마들

중앙일보 2015.06.03 02:10 종합 10면 지면보기
“아기의 양 무릎뼈 바로 아래에 오목한 부분을 3~5초 정도 지그시 눌러 주세요. 180㎝까지 키울 수 있는 성장촉진 자리입니다.”


맞벌이 며느리가 주선 그룹과외
성장촉진 마사지, 영어동요 배워
“이래저래 잔소리에 과외까지 …”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60대 할머니·할아버지 6명이 모였다. 손주를 위해 ‘육아 과외’를 받기 위해서다. 할머니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책에 열심히 받아 적기도 했다.



 맞벌이부부 증가로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육아’ 가정이 늘면서 할머니·할아버지를 위한 ‘육아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주로 아이의 나이대가 비슷한 부모가 모여 강사를 초빙해 그룹과외 식으로 조부모를 교육시키는 형태다. 대학 유아교육·아동학과 출신에 어린이집 원장을 지낸 강사들은 스타 강사로 통한다. 육아강사 윤모(42)씨는 “강남·송파·분당 등 강남권 지역에만 20~30개의 강의가 있다”며 “30대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의 커리큘럼은 신세대 엄마들의 입맛에 맞게 짜인다. 일부 시·군·구청이나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에서도 황혼육아교실을 운영하지만 사설 강의에선 성장촉진 및 척추강화를 위한 마사지법, 두뇌 발달에 좋은 영어동요까지 더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수업에 참석한 김순예(62) 할머니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며 “하지만 손주가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하려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스마트 젖병이나 무릎 보호매트 등 황혼육아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 역할도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일하는 강사 최모(47)씨는 “수업에서 친해진 할머니들끼리 좋은 어린이집을 알아보기도 한다”며 “평균 강의료는 강사와 구성인원에 따라 월 30만~80만원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이왕 키워 주는 것이니 제대로 하면 좋은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주부 윤소정(36)씨는 “아이가 육아도우미보다 할머니 품에서 자라는 게 정서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해 육아를 부탁했다”며 “육아과외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조부모들 중에는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세 살짜리 손녀를 둔 황모(62) 할머니는 “아이를 오래 업으면 ‘O다리’가 된다거나 흘린 걸 먹이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과외까지 시키는 것 같아 속으론 섭섭하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할마(할머니+엄마의 합성어)들의 시름은 깊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맞벌이 가정 510만 가구 중 250만(49%) 가구가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가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황혼 육아에 대해 ‘희망하지 않는다’(34.7%)거나 ‘그저 그렇다’(37.1%)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황혼육아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전혜정 교수는 “육아 방식이나 시간 등에 있어 조부모의 선택권이 제한되면 자식세대와 갈등이 생기기 쉽다”며 “황혼육아로 노년의 삶이 개선되고 새로운 가족모델이 생길 수 있도록 양 세대가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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