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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명품관에 아저씨들

중앙일보 2015.06.03 00:39 경제 2면 지면보기
‘샤넬 백이나 루이비통 가방 대신 최고급 시계나 고가 패션에 지갑을 연다. 로고가 뚜렷한 과시형 제품보다는 브랜드 특성이 은근하게 드러나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강남·서울 지역과 여성 위주에서 전국 단위, 남성으로 소비가 확산됐다.’


에비뉴엘 10년 매출 빅데이터 분석
까르띠에·루이비통·불가리·샤넬
4대천왕 브랜드 인기 흔들림 없어
개성 브랜드 모은 편집숍에 몰려
특징 살짝만 드러난 디자인 선호

 최근 10년 동안 바뀐 한국의 ‘명품’(고가 해외 브랜드) 소비 행태다. 에비뉴엘 본점(롯데백화점 명품관)의 10년 매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2005년 서울 강북 지역 첫 명품관으로 문을 연 에비뉴엘 본점은 명품 소비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1만㎡(약 3000평)로 규모도 크지만 매장의 70%가 각 명품 브랜드의 전국 매출 1위 매장이기 때문이다. 에비뉴엘의 세부 매출 내역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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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명품 백 쏠림 현상’이 확 줄었다는 것이다. 개점 당시만 해도 80%에 육박했던 핸드백·지갑 같은 잡화 제품 판매 비중이 10년만에 절반 정도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시계·보석은 약 2배, 해외 패션의 경우 4배 넘게 비중이 커졌다. 윤우욱(44) 롯데백화점 명품 담당 수석바이어는 “명품 시장은 핸드백에서 시작해 시계·보석을 거쳐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 의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다. 고가의 시계를 구입하면 거기에 어울릴만한 고급 정장을 찾게 되는 식으로 소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한국은 시계·보석과 의류 소비가 동시에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윤 수석은 “10년 동안 에비뉴엘 매출이 1200억원에서 33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한국 명품 시장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루이비통 에비뉴엘 매장이 여성 의류 제품을 대폭 늘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시계·보석 소비가 늘면서 ‘매출 10대 브랜드’에도 변화가 생겼다. 개점 당시만 해도 롤렉스와 에비뉴엘 시계 편집매장 정도만 순위권에 들었지만 2011년부터 예거르쿨트르·바쉐론콘스탄틴·피아제 같은 고가 시계 브랜드가 이름을 올렸다. 개당 7000만~8000만원 정도의 고가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의 경우 올 4월 에비뉴엘에 국내 두 번째 매장을 연지 한 달만에 10억원어치를 판매하기도 했다.



 윤 수석은 “2010년부터 스위스 바젤 시계·보석박람회 출품작을 따로 모아 행사를 여는데 매번 4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계 소비의 증가는 ‘남성 명품족’의 비중이 늘어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05년 23.2%였던 에비뉴엘 남성 고객의 비중은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에는 30%에 육박했다. 이와 맞물려 여성 고객의 비중은 70%로 떨어졌다. 올해는 남성 비중이 30%대, 여성이 60%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을 열면서 백화점 업계 최초로 VIP라운지에 남자 화장실을 만들고, 남성 퍼스널 쇼퍼의 영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10년 동안 다른 브랜드의 부침 속에도 순위권을 지킨 ‘명품 4대 천왕’. 왼쪽부터 까르띠에 시계, 루이비통 핸드백, 불가리 시계, 샤넬 팔찌. [중앙포토]


 유행에 따라 브랜드 순위가 바뀌기도 한다. 악어가죽 백으로 유명한 콜롬보는 최근 특피(악어·타조 같은 특수 가죽) 제품이 유행하면서 순위권에 재진입했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발망’과 이탈리아 편집숍 ‘10꼬르소꼬모’의 인기도 개점 당시와 달라진 점이다.



 윤병진(44) 롯데백화점 명품 담당 바이어는 “과거에는 명품 중에서도 유명 브랜드, 그 중에서도 로고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상품이 인기였다”며 “요즘은 개성있는 브랜드를 다양하게 모아놓은 편집숍,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은근한 디자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편집숍인 10꼬르소꼬모의 ‘세계 첫 백화점 내 매장’을 열기 위해 5층 한 층을 다 내줄 정도로 공을 들인 배경이다. 10꼬르소꼬모를 국내에서 운영하는 제일모직 관계자는 “톰브라운·쥬세페자노티·알라이아 등의 독특한 브랜드가 특히 매출이 높다”라며 “오프화이트처럼 개성있는 남성 패션도 인기”라고 말했다. 에비뉴엘이 최근 지방시·디스퀘어드2·몽클레르·필립플레인 같은 젊은 감각의 ‘2세대 명품’ 매장을 계속 늘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양한 브랜드, 시계·보석을 선호하는 최신 경향에 맞춘 에비뉴엘 본점의 편집숍 10꼬르소꼬모(왼쪽)와 고가 시계 매장. [사진 제일모직·에비뉴엘]


 ‘젊은 명품’이 각광받는 건 한국의 명품 소비를 30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36.7%였던 30대 고객 비중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42.1%를 기록했다. 40대가 16.8%로 그 뒤를 잇고 있다. 게다가 실제 연령보다 더 젊은 감각의 패션을 소화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임정희(40) 에비뉴엘 퍼스널쇼퍼 실장은 “요즘 50대 VIP 고객은 대부분 ‘30대 패션’을 멋지게 소화한다”며 “유니클로 같은 중저가 브랜드와 명품 의류를 섞어입는 등 패션 감각이 젊다”고 말했다.



 윤병진 바이어는 “요즘은 자기 나이에 0.8을 곱한 패션을 추구한다”며 “40세면 32세 정도의 감각으로 입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피카부 백’의 인기로 펜디의 매출이 약 2배로 늘었고, 의류 제품 비중이 유독 높은 버버리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10년 동안 여러 명품 브랜드가 부침하는 가운데에도 까르띠에·루이비통·불가리·샤넬 등 이른바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전통적인 명품의 인기는 흔들림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에르메스는 에비뉴엘 본점에 입점하지 않았다.) 특히 샤넬의 경우 명품 소비가 점점 고가 상품으로 옮겨가면서 개점 당시보다 매출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모든 등급의 VIP 고객이 1~2위로 선호하는 브랜드였다.



 명품관 고객 중에서도 구매액에 따라 선호하는 브랜드가 다르다. 지난해 에비뉴엘 VIP고객의 구매 건수를 분석해보니 VIP 고객(연간 명품 구매액 3000만원 이상 6000만원 미만)은 롤렉스·티파니·루이비통을 많이 구입했지만, VVIP(6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 LVVIP(1억원 이상) 고객은 아니었다. 반면 고급 소재의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인 로로피아나는 VVIP 이상만 선호했다. 샤넬·까르띠에는 모든 등급에서 인기 있었다.



 명품 소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2005년 69.6%였던 서울 소비자 비중은 지난해 62.4%로 줄었다. 반면 경기도는 19.2%에서 23.1%로 늘어나는 등 충청·전라도를 비롯해 전국의 소비자 비중이 증가했다. 서울 지역 매출도 서초·강남·종로구 위주에서 25개구 전역이 고루 늘어났다.



 윤우욱 수석바이어는 “과거에는 서울에서 인기있는 디자인이 수도권과 지방 순으로 시간차를 두고 유행했는데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퍼진다”며 “사실상 전국이 하나의 상권으로 변해 지방 명품관에도 편집숍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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