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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사스에 맞섰던 홍콩의 시민의식

중앙일보 2015.06.03 00:25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우리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처 방식을 따지기 전에 시계를 2009년 5월 홍콩으로 돌려 보자. 당시 신종 플루(인플루엔자 A/H1N1)가 확산하면서 홍콩은 방역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때 시내 메트로파크 호텔에 투숙한 멕시코인 한 명이 병원에서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바로 그 순간, 의사는 다이얼을 홍콩 위생서로 돌렸다. 응급차가 병원으로 돌진해 그를 격리하기까지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또 그가 묵었던 호텔에 의료진과 경찰이 들이닥쳐 봉쇄에 들어간 것도 불과 한 시간 내에 이뤄졌다. 호텔 투숙객 300여 명은 신종 플루 바이러스 잠복기인 일주일 동안 팔자에도 없는 호텔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한 한국인 사업가가 “1억 달러 계약을 해야 하는데 의료진과 함께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콩 위생당국에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호텔 봉쇄 당시 시내에 있었던 외국인 모두가 자진 복귀했는데 유독 한국인 3명만이 이를 거부했다. 결국 홍콩 정부는 한국 영사관의 협조를 얻어 이들을 격리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조치에도 당시 홍콩에선 2만6000여 명이 감염됐고, 2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홍콩 특파원이었던 기자가 위생서 관계자에게 “너무 과한 조치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는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700만 홍콩 시민의 불편도 감수해야 하고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요즘 홍콩 정부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한국인 K씨의 접촉자에 대한 격리·추적은 물론 한국에서 들어온 모든 여행객까지 감시를 강화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K씨의 출국은 이미 정부가 사과했으니 실수라고 치자. 그런데 어떻게 K씨와 접촉했다 귀국한 사람이 다시 홍콩으로 출국하는 일이 가능할까. 홍콩의 논리로 보면 자유의 탈을 쓴 극단적 이기주의와 타인의 생명 경시에 대한 방임 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격리가 전염병 확산을 막는 기본이라는 방역의 상식조차 무시한 셈이다. 그 정부에 그 국민이라 했던가. 신종 플루 사태 당시 격리를 거부해 비난받았던 한국인의 시민의식 실종은 엊그제 홍콩에서 한국 여성 2명이 한때 격리를 거부하면서 6년 만에 반복됐다. 정부의 무개념 대처와 후진적 시민의식은 그대로 국익에 대한 손해로 돌아오고 있다. 이미 중국인 82%가 “K씨 출국을 막지 않은 한국 정부는 마땅히 사과하고 해명해야 한다”는 쪽의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여행사에는 한국 여행을 취소하겠다는 중국인들의 전화가 줄을 잇는다. 개인의 자유만을 고려한 정부의 민주(?) 방역 덕에 국가 이미지 추락은 물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바로 코앞에 닥쳐왔다.



최형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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