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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베이징덕과 영화 ‘음식남녀’

중앙일보 2015.06.03 00:02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살코기보다 맛있는 껍질, 제대로 만들려면 하루 꼬박



영화 ‘음식남녀’ 속 남자 주인공 주사부가 매주 일요일 베이징덕을 요리하는 이유는 세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아버지와 갈등을 빚지만 결국 둘째 딸이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는 연결 고리도 요리다. 둘째 딸이 만든 요리를 처음 맛본 아버지는 “맛있다”는 무뚝뚝한 표현으로 마음을 전한다.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음식남녀’의 베이징덕입니다.



오리는 건륭제·서태후 등 당대 최고의 미식가가 사랑한 식재료입니다. 중국인들은 육질이 부드럽고 끝 맛이 고소한 훈제오리를 즐겨 먹었지요. 그중에서도 13세기 원나라에서 유래한 베이징덕(Beijing Duck)은 대표적인 훈제오리 요리 중 하나입니다. 건조와 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조리 과정이 복잡합니다. 영화 ‘음식남녀’(1994) 주인공인 주사부는 세 딸을 위해 일요일 점심마다 집에서 베이징덕을 만듭니다. 세 딸 중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지만 그는 딸을 위해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와 세 딸이 화해하는 것도 요리를 통해서죠.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요리, 베이징덕입니다.



도원의 곡성락 셰프는 육질이 촉촉하고 기름기가 없도록 북경 유명 식당 ‘편의방’ 방식으로 오리를 굽는다.


#1  일요일 오전 11시, 백발의 주사부(랑웅)가 세 딸을 위해 점심 만찬을 준비한다. 살아 있는 오리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바른다. 오리를 굽기 전 미리 앞마당에 있는 드럼통에 땔감을 넣고 장작 불을 붙인다. 주둥이를 벌려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자 몸통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오리의 몸통에 소스를 여러 번 끼얹는다. 장작불에 구워 보기 좋은 갈색으로 그을린 오리를 꺼내 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주사부. 얇게 썰어 접시에 올린 다음 세 딸이 앉아 있는 식탁 위에 내려놓는다. 꼬박 몇 시간이 걸리는 요리지만 딸들이 먹을 음식이라는 생각에 행복하다. 베이징덕을 완성한 그의 표정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2 아버지를 닮아 요리에 관심도 많은 둘째 딸 가천(오천련). 하지만 아버지는 딸이 셰프가 아닌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기를 바란다. 요리하고 싶을 때마다 가천은 장을 봐서 남자 친구의 집으로 찾아간다. 아버지에게는 비밀이지만 그녀는 주방에 머물 때 가장 행복하다. 그중에서도 훈제오리 요리는 아버지에게 배운 비법 메뉴다.



가천 : 이것도 먹어봐. 오리 살코기로 만든 요리야.

남자 친구 :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10인분은 되겠어.

가천 : 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좋아. 그래야 보람이 있거든. 오리는 살코기보다 껍질을 먹어야 맛있어. 살코기는 콩을 넣어 살짝 볶아 먹는 게 좋아.

남자 친구 : 난 벌써 배가 불러.

가천 : 마늘을 넣었더니 정말 맛있지 않아? 맛과 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거든. 남자한테 최고의 음식이지.





껍질은 바삭, 속살은 촉촉한 ‘북경 대표 요리’ 베이징덕

오리에 소스 바르고 건조·숙성 후 장작불에 구워야 정통식

주로 전병에 싸먹어…한국선 신사동 ‘베이징덕’이 젤 오래돼





베이징덕을 먹을 때는 밀전병에 파채ㆍ땅콩ㆍ오리껍질을 골고루 싸서 첨면장(춘장에 대추ㆍ설탕을 섞어 단 맛이 나는 장)에 찍어 먹는다.


‘요리사는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영화 속 주인공이자 대만 최고의 셰프인 주사부는 다르다. 그는 세 딸과 함께 모여 식사하는 일요일 점심 만찬을 위해 오전 내내 요리한다. 그 결과 동파육·베이징덕·로브스터찜 같은 산해진미가 식탁에 오른다. 하지만 세 딸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하다. 대화도, 웃음도 없이 먹는 수십 인분의 식사가 부담스럽다. 아버지는 딸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지만, 딸들은 하루빨리 집을 떠날 궁리 중이다.



 독신주의자 큰딸이 갑작스러운 결혼을 알리며 집을 뛰쳐나가도, 막내딸이 임신을 선포한 뒤 집을 나가도 일요일 점심 만찬 의식은 계속된다. 카메라는 오리 한 마리를 손질하고, 바람을 불어넣고, 장작불에 익히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자세하게 비춘다.



① 영화 내내 등장하는 산해진미.
② 고기를 손질하는 장면.
③ 베이징덕 조리 전 오리에 숨을 불어넣는 주사부.
④ 주사부의 거대한 식재료 창고.
 중국 사람들은 베이징덕을 ‘베이징카오야’라고 부른다. 카오야의 ‘카오’는 굽는 행위를, ‘야’는 오리를 뜻한다. 원래는 베이징(北京)이 아닌 난징(南京) 사람들이 즐겨 먹던 요리였는데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1368~1644) 가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음식 이름도 베이징덕으로 바뀌었다. 곡성락 더플라자호텔 ‘도원’ 셰프는 “양념을 바르고 건조해 껍질을 바삭하게 굽는 현대식 조리법은 청나라(1616~1912) 때 개발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명나라 때는 단순한 구이로 즐겼기 때문에 타버린 껍질은 먹지 않고 버렸다. 껍질이 타지 않도록 소스를 발라 구운 건 청나라 산둥(山東) 지역 요리사들이다. 이게 맛있다고 소문이 나자 미식가로 유명한 서태후(1835~1908)가 요리사들을 황실로 불러들였다. 베이징덕 조리법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베이징덕을 만들 때는 짧고 체구가 큰 북경 오리를 써야 제맛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어려워 주로 국산을 쓴다.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생후 2개월부터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둬 키운다. 도축 15일 전부터 지방 함량을 높이기 위해 특수 곡물을 먹인다.



 정통 방식으로 베이징덕을 조리하려면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린다. 여경옥 롯데호텔 중식 상무는 “베이징덕의 화룡정점은 살코기가 아닌 껍질”이라고 강조한다. 영화에서 주사부가 오리 주둥이를 잡고 ‘인공호흡’을 실시하는 것도 살과 껍질 사이에 바람을 불어넣어 층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여셰프는 “이렇게 해야 껍질에 주름이 생기지 않고 바삭하다”고 설명한다. 작업을 마친 오리는 내장을 꺼내 꿀·물엿·식초 섞은 양념을 발라 대롱에 꽂아 벽에 걸어놓는다. 최소 반나절 이상 건조하는 것이 좋다. 다음은 장작불을 피워 열기로 고기를 굽는다.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뚜껑을 닫아두어야 훈연 향이 진하게 밴다. 땔감은 배·대추나무 같은 과일나무 장작이 좋다. 잘 타고 특유의 향긋한 풍미가 고기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숯을 쓰기도 한다. 약 200℃ 장작불에서 1시간 정도 익히면 완성이다.



 숙련된 셰프가 조리한 베이징덕은 붉은 대추처럼 윤기가 흐른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기름기가 빠져나가 부드럽고 촉촉하다. 먹을 때는 지름 5cm 크기의 구절판처럼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파채·땅콩과 같은 부재료를 첨면장(춘장에 대추·설탕을 섞어 단맛이 나는 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배가 된다. 베이징덕은 맛뿐만이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



 베이징덕을 제대로 맛보려면 베이징으로 가야한다. 1864년 천안문 거리에 문을 연 ‘취엔쥐더’(전취덕)는 베이징덕의 대명사다. 대추나무·배나무·봉숭아나무 장작으로 굽는다. 주문하면 셰프복을 입은 요리사가 베이징덕을 담은 게리동(음식이나 술을 담아 이동하는 바퀴 달린 트레이)을 끌고 눈앞에서 오리를 썰어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베이징덕 전문점은 안승진 사장이 1989년 문을 연 압구정 ‘베이징덕’이다. 국산 오리를 특수 제작한 전기 기계로 220℃에서 1시간20분 굽는다. “중국 오리는 껍질이 두껍고 기름진데, 국산 오리는 껍질이 얇은 대신 살이 더 연하고 부드럽다”는 게 안씨의 설명이다. 더플라자호텔 ‘도원’의 베이징덕은 600년 전 명나라 시대 세워진 북경의 유서 깊은 식당 ‘편의방’ 방식으로 오리를 굽는다. 화덕 뚜껑을 덮어 그 열기로 굽는데 기름기가 완전히 제거돼 담백하고 맛있다. 2004년 청담동에 1호점을 낸 ‘마오’도 유명하다. 장작 대신 숯불에 국산 유황 오리를 구워 잡내가 없고 깔끔하다. ‘JS가든’은 20일간 전용 사료를 먹인 국산 오리를 쓴다. 참나무 장작에서 구운 고기를 요리사가 직접 썰어준다. 하루 전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베이징덕을 응용한 메뉴도 다양하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그라넘 다이닝 라운지’의 김병학 조리장은 “베이징덕 살코기로 수프를 끓이면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고 소개한다. 김셰프는 “채소와 함께 볶으면 오리의 지방 성분이 채소와 섞이며 더 부드럽고 맛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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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이야기



“베이징 가면 이건 꼭 먹어야 해”




10년 전 겨울, 중국어를 공부하며 중국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고 있던 저는 혼자 중국을 여행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여행 일정 중에는 자금성, 왕푸징, 천단공원, 이화원, 만리장성 같은 유명 관광지와 함께 ‘취엔쥐더’(全聚德) 베이징카오야(북경오리) 식당에 가보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먹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일부분이니까요. 중국어를 공부하거나 중국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게 취엔쥐더의 베이징카오야거든요. 문제는 중국 음식은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앉아서 여러 가지 메뉴를 돌려가며 먹어야 제맛이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혼자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정말 먹어보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맛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베이징에 왔으니 반드시 베이징카오야는 먹고 와야지’라는 생각에 당당히 취엔쥐더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반 마리도 주문할 수 있다더군요. 주문하고 기다리니 요리사가 카트에 잘 구워진 오리 한 마리를 올려 제 옆으로 오더니 칼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요리사의 손안에서 오리의 바삭한 껍질은 껍질끼리, 촉촉한 속살은 속살끼리 모아져 제 식탁 위에 올려졌습니다. 먼저 껍질을 춘장에 찍어서 먹어 보니 느끼하지 않고 바삭했어요. 그리고는 함께 나온 전병에 고기와 채소를 올리고 춘장을 넣어서 한입 베어 무니 왜 베이징카오야가 유명한지 알겠더라고요. 그냥 먹고, 싸서 먹고, 이렇게 저렇게 신나게 먹었죠.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다시 베이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아는 동생과 함께 취엔쥐더를 찾았습니다. 변함없이 바삭한 오리고기가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그 겨울 처음, 혼자 먹었던 그 맛의 추억은 잊을 수 없더라고요.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준 베이징카오야, 하오시앙니아!(그립다) 김은희(33·봉천동)






▶서울에서 베이징덕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서울에서 베이징덕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3곳을 소개합니다.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요리연구가 강지영, 곡성락 플라자호텔 도원 셰프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베이징덕]



“89년 문 연 국내 최초 베이징덕 전문점

조선오이피클과 껍질째 먹는 삶은 땅콩도 유명”




○ 특징: 안승진·장신자 부부가 1989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중국 북경의 유서 깊은 베이징덕 레스토랑 취엔쥐더에서 일하던 중국인 요리사를 영입했다. 지금도 베이징덕 요리사는 모두 중국인이다. 전라남도 나주 근교의 베이징덕 전용 농장에서 사육한 국산 오리로 요리한다. 중국 오리보다 껍질이 얇은 대신 살코기가 연하고 부드럽다. 한 마리, 반 마리 단위로 판매하며 오리고기로 속을 채운 찐만두도 인기다.

○ 가격: 4000~6만원대. 베이징덕 6만3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 반~오후 10시 반, 매월 첫째·셋째 주 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512-5252

○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30길 12(신사동 610-1) 1층

○ 주차: 가게 앞 5대 가능




[JS 가든]



“5개의 룸이 있어 비즈니스 모임에 적합하다

고량주·위스키·와인 등 주류가 다양하다”




○ 특징: 은은한 조명 시설을 갖춘 2층 공간이라 저녁에 방문하면 와인 바 같은 분위기다. 중국 기술자가 화덕을 설계했다. 화덕에서 180℃ 불에 50분 굽는 베이징덕이 유명하다. 밀전병은 반죽에 시금치를 섞어 녹색이 난다. 땅콩 소스와 춘장을 섞은 매콤달콤한 호이신 소스가 고기 맛을 돋운다. 베이징덕 외에 동파육·전복찜·전가복 같은 중국 미식 메뉴를 다양하게 판매한다.

○ 가격: 2만9000~11만원(세트), 베이징덕 8만원

○ 영업시간: 11시 반~3시(점심), 오후 5시 반~10시, 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3447-4488

○ 주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 174길 13(신사동 638-9)

○ 주차: 발레파킹




[베이징코야'



“붉은 글씨로 치장한 입구부터 중국 분위기 물씬

오픈 키친 화덕의 조리 과정을 보는 즐거움도”




○ 특징: 3층에 베이징덕 전용 가마를 설치해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베이징덕은 베이징 레스토랑 취엔쥐더와 같은 방식으로 굽는다. 200~250℃ 화덕에서 참나무 장작을 때서 익히는 게 원칙이다. 다 구운 뒤에는 요리사가 눈앞에서 직접 고기를 썰어준다. 전병에 싸먹는 소스는 자두를 오래 조려 진하고 달콤한 풍미가 난다. 오리 살코기와 뼈에 인삼을 비롯한 한약재를 넣고 하루 종일 푹 곤 ‘육골즙’ 메뉴도 유명하다. 마늘소스볶음·채소볶음·탕수육 등 오리를 주재료로 한 메뉴가 다양하다.

○ 가격: 1만8000~6만원대, 베이징덕 6만5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 반~오후 10시, 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313-5292

○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2길 29-1(수송동 110)

○ 주차: 건물 내 주차 가능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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