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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바둑을 닮은 시진핑 외교

중앙일보 2015.06.03 00:01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얼마 전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조훈현 9단을 초청해 중국대사관에서 친선 대국을 가졌다. 아마 3단 실력으로 이태 전 중국 외교부 내 바둑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는 늘 한국 바둑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여류 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가 과거 중국을 떠나 해외를 떠돌게 됐을 때 반갑게 맞아준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루이를 통해 조 9단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 터라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지도를 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여섯 점을 깐 이날 접바둑에서 승부는 의미가 없었다. 추 대사의 포석은 한국 각계 인사와 보다 많이 교류해 한국의 마음을 사겠다는 공공외교(公共外交)의 성격을 짙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띈 건 추 대사의 기풍(棋風). 조 9단의 평대로 ‘속기(速棋)’였다. 또 공세적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 떠올랐다. 시진핑은 지난해 이맘때 베이징(北京)대를 방문해 학생들의 대국을 관전했다. 그런 뒤 한 학생의 매우 공세적인 행마를 본 뒤 “중국 외교가 이 학생을 배웠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 시진핑의 바둑 실력은 어떨까. 정확한 실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단한 바둑 애호가임엔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3년 방중 때 중국 바둑의 대표 주자인 창하오(常昊)를 초청해 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시킨 점이나 베이징대가 시찰 나온 시진핑을 위해 학생들의 대국을 관전토록 하는 일정을 포함시킨 것 등을 보면 그렇다.



 특히 중국 바둑의 대부(代父)인 녜웨이핑(<8076>衛平) 9단이 시진핑의 절친임을 생각할 때 그의 바둑 사랑은 매우 클 것으로 짐작된다. 시진핑은 중학 시절 녜웨이핑, 그리고 또 다른 친구인 류웨이핑(劉衛平) 등과 함께 늘 어울려 다녔다. 그래서 베이징의 ‘3핑(三平)’이란 말이 다 나왔다. 세 사람 이름 모두 핑(平)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바둑을 본격적으로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오랜 전우인 겅뱌오(耿<98C8>)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로 일하게 되면서다. 겅뱌오는 바둑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단련할 수 있다며 바둑을 권했다. 바둑은 2000여 년 넘게 중국의 장군과 정치가, 문인 등이 즐겨 온 전략 게임이다. 시진핑 또한 “바둑을 두며 치국(治國)의 도리를 배웠다”고 술회한 바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진핑의 외교 또한 바둑을 닮은 모양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에 맞서 펼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이 그렇다. 미국이 2008년 가을 시작된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시아에서 중국의 덩치가 부쩍 커져 있었고, 이에 놀라 아시아에 다시 힘을 집중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 아시아 회귀의 본질이라고 중국은 본다.



 시진핑의 중국은 어떻게 이에 대처하나. 바둑의 오랜 격언처럼 상대 손 따라 두지 않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상대가 던지는 수에 끌려다니는 바둑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중국은 아시아 무대에서 미국과의 대결을 피한다. 미국이 아시아에 집중한다면 중국은 아시아에서 슬쩍 손을 빼 세계를 상대로 나아가겠다는 계산이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중국에 대한 포위를 생각한다면 중국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경제대(一帶)’와 동남아와 인도를 넘어 아프리카로 뻗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一路)’ 건설을 통해 보다 넓은 지구촌 차원에서 미국을 포위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어로 바둑은 ‘웨이치(圍棋)’다. 돌(棋)을 포위하는(圍) 게임이다.



 서양의 체스는 상대의 킹을 잡는, 즉 완전한 승리를 노린다. 반면에 바둑은 상대보다 많은 집을 확보하면 된다. 비교우위를 추구한다. 헨리 키신저가 말했듯이 체스 플레이어가 정면 충돌을 통해 적의 말을 제거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면 바둑의 고수는 판의 ‘비어 있는’ 곳을 향해 부단히 움직이면서 상대적인 우위를 확보한다. 서방 일각에선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포함된 중앙아시아나 동남아 국가들의 빈곤과 정정(政情) 불안을 이유로 실패를 전망한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들 국가는 판의 빈 곳에 해당한다.



 서양의 군사교리는 인구 밀집 지역이나 수도, 핵심 경제시설에 대한 공격 및 방어를 강조한다. 그러나 바둑은 귀와 변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전개되는 포석을 중시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장제스(蔣介石)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귀와 변에 해당하는 농촌 지역을 장악했기 때문이라는 게 미국 스콧 부어만이 『마오쩌둥 바둑전략』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기도 하다.



 시진핑의 일대일로 계획은 ‘3귀에 통어복(通魚腹)이면 필승’이라는, 즉 3귀를 확보하고 각 귀가 중앙을 통과해 이어지면 반드시 이긴다는 바둑의 격언을 따르고 있는 모양새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세 대륙을 일대일로 계획을 통해 연결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지구전(持久戰)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늘 시간에선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서방이 시진핑의 외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둑부터 배울 필요가 있겠다.



글=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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