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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 금융이 매력 없는 이유

중앙일보 2015.06.02 00:46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한국 금융산업에 매력을 못 느낀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지난달 중동과 유럽에서 열린 우리은행의 기업설명회(IR) 참석자들이 전한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랭했다. 이번 행사는 여느 IR과 의미가 달랐다. 네 차례 실패한 민영화 작업의 재시동을 앞두고 해외 국부펀드와 연기금의 반응을 탐색하는 자리였다. 정부 측인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까지 직접 참석한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현지 투자자들이 꼽은 한국 금융이 매력 없는 이유는 한결같았다. “수익은 쪼그라드는데 불투명한 규제는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고 수익이나 안정성, 둘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있어야 투자할 유인이 생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만큼 고수익을 바라기는 어렵다. 다만 모든 투자자가 높은 수익만 좇는 건 아니다. 특히 국부펀드·연기금은 속성상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에 주목한다. 정부가 내심 이들을 이상적인 우리은행의 주주로 상정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한국의 은행업은 수익성은 물론 안정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게 이번 IR에서 확인된 투자업계의 평가다. 그 주범으로 지목된 게 규제와 관치다. 정부와 정치권이 은행의 경영·인사·수수료 등에 간섭하는 데다 부실 기업에 자금 지원을 하라고 압박하는 바람에 수익을 한꺼번에 까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불만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가 금융산업을 혁신하자며 밀어붙인 ‘기술금융’부터가 그렇다.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담보 위주에서 벗어나 기술력을 평가해 대출하면 중소·벤처기업도 살고 은행의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한데 대통령이 챙기니 금융당국은 안달이 났다. 얼른 손에 잡히는 성과를 보여주려니 은행들 팔목을 비틀었다. 시행 1년도 안 돼 26조원이 풀리는 ‘이변’이 일어난 까닭이다. 그런데 기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이러니 ‘무늬만 기술금융’이 판쳤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 한 사람이 한 달에 80여 개 기업을 담당하기도 했고, 기술과 전혀 관련 없는 업체에 평가서가 나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슬슬 뒷감당이 두려워진 금융당국도 뒤늦게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현재 우리은행의 주가는 시가총액이 장부가의 40%에도 못 미치는 은행권 최하위 수준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의 주가가 한국 금융당국의 능력과 산업의 매력도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라고 본다면 낙제점에 가깝다. 보여주기식 개혁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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