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400쪽, 1만6500원
아름다운 죽음은 없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의학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의학이 인간다운 죽음을 지켜주고 있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죽음 대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이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1945년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0년대는 이 비율이 17%로 떨어졌다. 장소의 변화는 죽음의 정의를 바꿔놓았다. 죽음은 연명치료 기기의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 대체됐다. 비단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26만8100명 중 73%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반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율은 16.6%에 불과했다. 1989년 재택(在宅) 임종이 77.4%였던 것에 비하면 급격히 늘어난 수치다.

그간 현대의학은 관절염·당뇨병·심장질환 등 개별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가완디는 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치료의 외연을 넓혀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하는 노인병학(geriatrics)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의사가 일방적으로 질병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사는 날까지’와 ‘죽는 날까지’는 동의어다. 결국 책의 제목인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마지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으로 치환된다.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거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가완디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좋겠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