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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율곡이 ‘어리석을 우’를 즐겨 쓴 까닭

중앙일보 2015.05.30 00:45 종합 22면 지면보기
김홍도의 ‘자화상’. 얼굴은 작게, 도포와 망건은 크게 그려 선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호(號), 조선 선비의 자존심

한정주 지음, 다산초당, 704쪽, 3만3000원




율곡(栗谷) 이이(1536~84)는 조선시대 과거를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을 자치한 당대의 천재였다.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했지만 1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방황했던 그는 20대에 다시 세상에 나와 별시해(別試解) 문과발해(文科發解) 등을 수석으로 통과하며 “진실로 천재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호로 ‘율곡’ 외에 ‘어리석을 우(愚)’자를 넣은 ‘우재(愚齋)’를 즐겨 사용했다.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규율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 또 한 명의 천재 김홍도(1745~1806년경)의 호 단원(檀園)에도 사연이 있다. 단원은 원래 명(明)나라에서 사대부 화가로 이름을 날린 이유방(李流芳)의 호다. 중인 출신 화가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김홍도가 원했던 이상적인 자아는 고결한 선비였다. 이유방을 동경했고, 당대 최고의 사대부 화가였던 강세황을 평생 스승으로 섬겼다.



 역사평론가인 한정주씨가 이이와 김홍도 외에 정약용·정도전·박지원·김시습·정조 등 조선을 이끈 인물들의 호(號)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파헤친 책이다. 당시 선비들의 이름에는 명(名)과 자(字)와 호(號)가 있었는데, 명과 자는 부모나 스승이 지어줬다. 반면 호는 자신이 마음대로 지어 부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지명, 본받고 싶은 인물, 책 속 한 구절 등에서 호를 따와 뜻과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의미에서 호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사회적 표상”이었다.



 호를 열쇠로 들여다 본 선비들의 마음 속 풍경은 흥미롭고 때론 애잔하다.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널리 알려진 다산(茶山) 외에도 여유당(與猶堂)·삼미자(三尾子)·탁옹 등 12개가 넘는 호를 사용했다. 기분에 따라 카톡 프로필을 바꾸는 식으로 그때 그때 자신의 처지에 맞춰 호를 바꿔쓴 셈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서 따온 ‘여유당’은 평생을 정적의 공격에 시달린 그가 삼가하고 조심하는 태도를 다짐하며 지은 호다. 60세 때 직접 쓴 묘지글에 사용한 호는 ‘사암(俟菴)’이었다. ‘초막에서 기다리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꿈꿨던 사회를 실현해 줄 새로운 세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저자는 고상하고 재기 넘쳤던 ‘작호(作號)의 미학’을 들여다보며 옛 선비들의 ‘호 문화’를 현대에 복원해보면 어떨까라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호기심이 생긴 독자라면 책 말미에 실린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 소사전’과 ‘작호론(作號論)’을 참고해도 좋겠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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