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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시체 더미서 목숨 건진 푸틴 어머니 "독일군도 사람인데 미워할 수 있겠니"

중앙일보 2015.05.29 00:01 부동산 및 광고특집 4면 지면보기
어머니·외활머니와 같이 있는 어릴적 푸틴 대통령. [kremlin.ru, 리아 노보스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부모님이 겪었던 일, 동생의 운명, 가족의 삶을 있게 한 놀라운 우연과 독일군을 미워할 줄 모르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은 칼럼을 썼다. 칼럼은 2015년 5월 ‘러시아 피오네르’ 55호에 실렸다. 이를 발췌해 소개한다.

푸틴 칼럼('러시아 피오네르' 발췌)-우리 가족이 겪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자원 아버지, 전투 중 중상
이웃사촌의 도움으로 목숨 건져
위생병이 가망 없다던 어머니
아버지 지극 정성 간호로 살아나





푸틴 대통령의 부친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군수공장 근로자에겐 전방에 나갈 의무가 없었지만 부친은 스스로 입당 신청서를 쓰고 군에 지원해 내무인민위원회 공작부대에 배치되었다.



작전 중 누군가의 배신으로 부대원 28명 중 24명이 독일군에 희생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는 매복을 뚫고 탈출했다.



푸틴 대통령은 칼럼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는 몇 시간 동안 연못 속에 숨어 갈대 줄기로 호흡했다. 겨우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이 지나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네바 강변에 있는 작은 전투기지 ‘넵스키 퍄타촉’에 배치되었다. 소련이 수만 병사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끈질기게 지켜온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중상을 입는데, 그의 아파트 이웃이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버지를 얼어붙은 네바 강을 건너 반대편 기슭으로 끌고 가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 [kremlin.ru]
푸틴 대통령은 칼럼에 이렇게 썼다. “그분은 병원에서 기다렸다가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 걸 확인하고는 ‘됐어, 이제 자넨 살 거야. 그럼 난 죽으러 가겠네’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께 ‘그래서 그분은 정말 돌아가셨나요?’라고 물었다. 두 분은 연락이 끊겼고, 아버지는 그분이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아버지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은인을 만나서였다. 우연히 레닌그라드에 있는 가게에 식료품을 사러 들어갔다가 조우하게 된 것이다. 두 분이 어떻게 같은 시간에 같은 가게에 갈 수 있었을까. 수백만 분의 일이나 될 법한 확률이다….”



푸틴 대통령의 아버지는 입원해 있는 동안 자기 몫의 배급 식량을 어머니에게 주었고, 어머니는 그걸 (푸틴의) 어린 동생에게 줬다. 의료진은 환자가 굶주려 실신하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어머니의 면회를 금지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동생이 굶어 죽은 것은 아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때 디프테리아에 걸린 것이 원인이었다. 부모님은 동생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몰랐다가 나중에 피스카룝스코예 기념묘지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기념 묘지에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150만 명가량이 묻혔다. 방어전에서 전사한 군인들과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공방전 당시 어머니가 어떻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는지도 회상했다. 부친이 병원에서 돌아와 아파트 현관으로 다가서는데 위생병들이 시체들을 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체들 사이에서 모친의 모습을 알아본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숨이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생병들에게 ‘아직 살아 있잖아요!’”라고 소리쳤다. 위생병들은 아버지에게 ‘길가까지만 나가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목발을 휘두르며 ‘도로 집에 데려다 놓으라’고 했다. 위생병들은 ‘당신 말대로 하겠지만, 앞으로 2~4주 동안 여기 오지 않을 거란 걸 알아 두세요. 당신 손으로 시체를 처리해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성어린 간호로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으셨다. 어머니는 1999년까지 사셨고 아버지는 1998년 말에 돌아가셨다.”



푸틴 대통령의 부친은 여섯 형제인데 그 중 다섯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외가 쪽에도 전쟁에서 희생된 친척들이 있다. “식구를 잃지 않은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이는 물론 슬픔이자 재앙, 비극이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적군을 증오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아직까지도 그 점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부드럽고 온화한 분이셨던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떻게 그 군인들을 미워할 수 있겠니?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고 똑같이 전쟁에서 죽어갔는데….’”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말을 기억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칼럼을 끝맺었다.



◆러시아 피오네르=2008년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지도자들과 관계가 돈독하다고 알려진 ‘코메르산트’지의 평론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가 편집장을 맡고 있다.



알렉세이 티모페이체프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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