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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인자에게 듣는다 <2> 딸 둘 아빠, 불혹 맞은 이창호 9단

중앙일보 2015.05.28 01:08 종합 25면 지면보기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에 놓인 자신의 핸드프린팅 앞에 선 이창호 9단. 한국기원이 2005년 한국현대바둑 60주년을 맞아 조성한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창호(40) 9단은 승부사의 정석(定石)이다.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냉엄한 승부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바둑판에서 아무리 피바람이 불어도 그의 얼굴은 언제나 고요하다.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은 가장 인상 깊은 기사를 묻는 질문에 이창호 9단을 꼽으며 “대국할 때 눈빛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돌부처’ 옛말 … 바둑 둘 땐 비관파, 삶은 낙관하고 싶다
학교 친구나 추억 없어 아쉬워
집에선 딸과 바둑알 놀이 즐겨
난 컴맹 … 인터넷도 아내가 해 줘
휴대전화는 통화?문자밖에 못 해



 이창호는 6살이던 1981년 할아버지 이화춘 손에 이끌려 바둑에 입문한다. 3년 뒤인 84년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됐다. 11살 입단한 이창호는 스승을 꺾으며 1인자에 올라선다. 92년 동양증권배에서 최연소로 세계 챔피언을 차지한 이후부터는 10여 년간 독보적인 최강자였다.



 세월이 흘러 ‘천재 소년’ 이창호도 불혹을 맞았다. 그사이 돌덩이 같이 감정이 없어 보였던 그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에는 바둑이 불리하면 종종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실수를 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차기도 한다. 이런 그를 보고 유창혁 9단은 “이창호가 이제는 좀 사람 같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호 9단을 만나 달라진 근황과 바둑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6년 프로에 입단했을 당시의 이창호 초단(11살). [중앙포토]
 # ‘딸 바보’ 이창호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둘째 딸 시연이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됐다. 주로 집에서 아내와 돌아가며 아기를 본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엄마를 닮은 것 같아서 많이 좋아했는데 크면서 점점 나를 많이 닮아가는 것 같다.”



 -요즘도 바둑 공부를 하는가.



 “집에서 가끔 바둑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바둑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첫째 딸 소정이가 와서 바둑알을 다 흩트려 놓는다. 그러면 딸과 바둑알 놀이를 하거나 다른 놀이를 해야 한다.”



 -바둑 말고 다른 취미가 있는지.



 “산책하는 것 말고 별다른 취미가 없다. 컴퓨터도 할 줄 모른다. 집에 컴퓨터가 있긴 한데 다룰 줄 모른다. 인터넷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아내가 해준다. 휴대전화도 전화와 문자 외에는 쓸 줄 모른다. 딸에게 배워야 할 것 같은데 가르쳐 줄지 모르겠다.”



 -바둑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아직도 바둑이 재미있는지 궁금하다.



 "워낙 오랫동안 바둑을 해서 자연스럽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려서는 단순히 재미있어서 바둑을 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바둑이 좋아졌다 싫어지는 게 반복되더라.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한 가지를 할 수 있는 걸 보면 바둑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다. 나중에 딸도 바둑에 관심을 보이면 가르쳐볼 생각이다.”



2010년 이창호 9단은 인터넷 바둑사이트 기자 출신 이도윤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기자와 취재원으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다. 슬하에 소정·시연 두 딸이있다. [중앙포토]
 # ‘돌부처’에서 ‘사람’으로



 -대국 시 감정 기복이 없기로 유명하다.



 “어렸을 때는 확실히 그런 편이었다. 30대 중반이 지나고는 오히려 감정 변화가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무던해지는데 나는 반대인 것 같다. 비정상적인 거다(웃음).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 과거와 현재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마음이 편하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한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바둑을 두면 인내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불리하기 때문에 기회를 노리면서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 말이다. 반박하고 싶지만 약하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기회가 오면 역전할 수 있다는 게 인생과 닮았다. 또 내가 유리하다고 너무 좋아하거나 방심하면 안 된다는 점이 비슷하다.”



 -만약 바둑 기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산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초등학교 5학년에 입단했기 때문에 제대로 학창시절을 보내본 적이 없다. 정상적인 교우 관계나 추억이 없다는 게 아쉽다.”



 -형세 판단할 때 실제보다 불리하게 보는 ‘비관파’다. 삶에서도 그런 편인지.



 “그런 것 같다. 부정적인 시각이 건강에도 나쁘다고 하더라. 그래서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바둑을 두면서 가진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서 쉽게 바꾸기 어렵다.”



 #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웹툰 ‘미생’에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고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도 없다”는 이 9단의 어록이 나온다.



 “ 노력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특별한 노력 없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나기는 쉽지 않다. 옛날에는 내가 바둑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어린 후배들은 내가 어릴 때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 그럼에도 요즘 독보적인 1인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 모든 분야에서 어느 한 명이 우세하기 어려워졌다. 어떤 수를 연구하면 바로 인터넷에 공유된다. 옛날에는 자기만의 묘수를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힘들다. 그렇다 보니 전반적으로 강한 기사들이 많아졌다.”



 - 상향 평준화됐다는 말인가.



 “그렇다. 예전보다 랭킹 1위와 초단의 실력차가 많이 줄었다. 요즘은 갓 입단한 선수도 실력이 강하다. 연구생 강자 중에도 대회에서 프로를 꺾는 경우가 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 그중에서도 유망주를 꼽자면.



 “신진서·신민준·변상일이 다. 어리고 재능이 있으니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신진서는 기재가 있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바둑을 두는 것 같다. 반면 가끔 경솔한 수를 둔다는 단점도 있다.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키우면 발전할 것이다.”



 -최근 ‘201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정관장황진단 주장으로 뽑혔다. 예상했나.



 “나도 많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선수 선발이 있기 며칠 전 김영삼 감독으로부터 주장을 맡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김영삼 감독과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이라 친하다.”



 -한국 바둑계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는.



 “과거보다 방송 비중이 늘었다. 특히 방송을 위해 의무적으로 기사들이 인터뷰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본인이 하고 싶으면 상관없지만 나 같은 경우는 강제로 하는 느낌이다. 나는 말을 잘 못하고 방송에 익숙하지 않아 부담이 크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거다. 좋은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게 행복하다.”



글=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창호 9단=1975년 전주 출생. 86년 입단. 88년 세계 최연소 타이틀 획득(제8기 바둑왕전), 92년 최연소 세계 챔피언(제3기 동양증권배), 94년 사이클링히트 달성(국내 기전 16개 1회 이상 우승), 96년 은관문화훈장 서훈. 2003년 그랜드슬램 달성(7개 세계 대회 1회 이상 우승), 통산 140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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