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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69> 독도 일본 주장은 이래서 허구

중앙일보 2015.05.28 00:58 경제 8면 지면보기
송의호 기자
지난해 일본 시마네(島根)현은 『다케시마(竹島) 문제 100문100답』이란 책을 발간했습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논리를 담은 겁니다. 이에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 는 이런 일본 주장의 허구성을 반박하는 『‘다케시마 문제 100문100답’에 대한 비판』이란 책을 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작은 따옴표(‘ ’)안은 문항과 답변 제목입니다.


1696년 에도막부 “울릉도·독도는 일본의 섬 아니다”



일본=‘1905년 다케시마 영토 편입은 어떤 경위로 이뤄졌는가.’ 다케시마는 1905년 1월 28일 시마네현 오키 도사의 소관으로 할 것을 각의에서 결정, 같은 해 2월 22일 시마네현 지사가 이를 고시함으로써 편입되었다.



독도의 역사와 현실을 설명한 경상북도 영문 독도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사진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


한국=‘1905년 시마네현에 의한 독도 편입의 진실은 무엇인가.’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키려고) 나카이 요자부로가 원서를 내무성 지방국에 가지고 갔더니 담당자인 이노우에 서기관이 내무성에서 1875년 작성한 관련 보고서 등을 살펴본 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출원을 각하시키겠다고 한다. “한국의 땅이라고 하는 의심이 드는 일개 불모의 암초를 취해 여러 외국에 우리가 한국 병탄의 야심이 있다는 걸 의심하게 하는 것은 이익이 극히 적은 데 반해 사태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일본=‘(독도가 일본의)‘고유영토’인데 영토를(다시 일본에) 편입하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다케시마는 근대 국제법이 동아시아에서 수용되기 전부터 동아시아의 국제적 규범질서 안에서 한국 또는 일본의 판도에 속해 있던 토지다. 한국과 일본이 유럽에서 기원한 근대 국제법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자국 영토로 인정받았다. 일본으로서는 역사적 권원(權源, 근거)을 재확인하기 위해 1905년 영토 편입 조치를 한 것이다. 따라서 편입은 다케시마가 고유영토라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한국=‘고유영토를 새삼스럽게 영토로 편입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고유영토라면 주민을 이주시켜 거주하게 한다든지 어로행위를 허가해주면 된다. 영토가 분명하다고 하면서 다시 편입을 하는 행위는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국제법에서 규정할 하등의 내용이 못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측은 고유영토를 편입해야 한다는 국제법도 없고 편입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법도 없다는 식으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



일본=‘다케시마의 강치에 대해 알고 싶다.’ 시마네현은 1905년 영토 편입 이후 강치잡이를 나카이 요자부로 등 4명에게 허가했다. 1908년까지 연간 1000마리 넘게 잡았다. 20세기 들어 울릉도 인구가 4000명에 가까울 즈음 모습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라인’을 표시한 그림이다. 1952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설정한 수역으로 독도가 안에 들어 있다. 일본 책에 실린 그림이어서 독도가 ‘다케시마(竹島)’로 표기됐다. 이승만 라인에 대해 일본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홈페이지 캡처], [사진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
한국=‘일본인들에 의해 멸절된 독도 강치.’ 일본이 수천 년 동안 독도에 살던 강치를 1900년대 초반 대량으로 포획한 데다 암컷과 새끼까지 남획한 결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강치는 멸절 상태가 됐다.



일본=‘맥아더 라인이란 무엇인가.’ 맥아더 라인이란 일본 점령기에 연합군 총사령부가 정한 일본 어선의 어업구역을 말한다. 여기서 다케시마를 맥아더 라인 밖에 뒀다. 한국은 이들 지령으로 인해 “다케시마가 일본령이 아닌 것으로 결정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령 안에 추가 규정이 있어 일본 영토의 결정과는 관계가 없다.



한국=‘맥아더 라인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최종적인 것이 됐다.’ 맥아더 라인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이 지령 이후 연합군 총사령부는 독도와 관련된 지령을 어떤 형태로든 새로 발령한 사실이 없다. 맥아더 라인은 사실상 최종적인 것이 됐다.



일본=‘한국은 무엇을 근거로 다케시마가 자국 영토라고 하는가.’ 한국은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를 영토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다케시마를 침탈했다는 역사문제로 다루고 있다. 메이지(明治) 정부는 1905년 무주지(無主地)였던 무인도에 다케시마라고 명명해 일본령으로 했지만, 한국 측의 역사인식으로는 러·일전쟁이 한창일 때 한국령 독도를 침탈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인식이 생겨난 데는 1952년 1월 28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공해상에 ‘이승만 라인’을 설정해 그 안에 다케시마를 포함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독도를 일본이 침탈했다는 것은 일본 학자들에 의해 규명된 사실이다.’ 우선 17세기 말 안용복의 활동을 계기로 한·일 양국 사이에 울릉도 영유권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을 때 일본 에도 막부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상세히 조사한 후 1696년 1월 28일 두 섬 모두 일본의 섬이 아니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 일본은 “독도까지 일본의 섬이 아니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1625년 12월 25일자로 막부에 제출된 돗토리(鳥取)번의 “두 섬 모두 일본의 어떤 번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회답서 등을 볼 때 어불성설이다.



외교부 독도 사이트. [홈페이지 캡처], [사진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
일본=‘다케시마의 일본 영토 편입은 제국주의적 침탈행위이고 일본의 조선 침략 제1보였는가.’ 사료를 상세히 검증해보면, 한국 병합과정과 다케시마 영토 편입 사이에는 상관성을 발견할 수 없다. 다케시마 영토 편입이 이뤄진 1905년 1월 28일은 일·러전쟁 중이자 1910년 한국병합에 이르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일본이 다케시마를 “한국에서 폭력으로 약취한” “일본에 의한 한국 침략의 최초의 희생자”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1905년 이전에 다케시마가 한국령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논증돼 있지 않으므로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독도는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양이었다.’ 1903년부터 불법으로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하던 일본인 나카이 요자부로가 강치잡이를 독점하기 위해 1904년 9월 29일 일본 정부에 ‘량코도(독도) 영토편입 및 대하원(임대권)’을 제출했다. 이 청원을 받아들인 일본 정부는 1905년 1월 28일 각의에서 독도 편입을 결의하고 시마네현에 편입을 지시했다. 정부의 지시를 받은 시마네현은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령해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편입했다.



일본=‘한국은 왜 일본 정부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제안에 응하지 않는가.’ 일본은 영토권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제안했으나 한국은 이렇게 답하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한국 국민에게 독도는 단순히 동해상의 작은 섬이 아니라 한국 주권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일시적이라 해도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에 의심을 나타내는 일은 할 수 없다.”



한국=‘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제안에 응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국제법적으로도 명백히 한국 땅인데 굳이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이유가 없다. 가서 승소한다고 해도 현재 상황보다 나아질 게 없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패소했다고 일본의 극우파나 위정자들이 순순히 독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일·한 우호를 위해 다케시마를 현상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가.’ 현재 일·한 양국의 우호관계에서 다케시마 문제가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보류하거나 미뤄두는 것은 일본 국토의 일부가 한국에 점거된 채 주권을 침해받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양국의 선린우호 관계라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일본이 독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고유 영토다. 이러한 한국의 영토에 경비대를 주둔시키거나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모두 한국의 주권에 기인한 정상적인 활동이다.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항의한다거나 국민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교육하는 것은 모두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으로 유엔(UN)헌장에 위반되는 엄중한 행위다.



일본=‘다케시마 문제 해결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민주당 정권 시대에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다케시마를 방문하자 일본 측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다케시마 문제를 역사 문제로 인식하는 한국 측은 위안부 문제와 일본해 호칭 문제, 야스쿠니 문제에서 공세를 취해 왔다. 우리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다케시마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사인식을 고집하는 한국의 실정을 이해한 뒤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독도 문제는 일본이 전쟁의 필요성에 의해 침탈했다는 것만 인정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일본은 관련자 모두 독도가 한국령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주지라고 강변하면서 독도를 편입했다. 러·일전쟁에서 상실된 제해권을 보완하기 위해 독도를 편입하고 망루를 설치·운영하기 위해 독도가 무주지라고 억지를 부렸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실만 인정한다면 독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일본=‘한국 문헌과 고지도에 보이는 ‘우산도’가 다케시마인가.’ 한국은 한국의 문헌과 고지도에 등장하는 우산도를 현재의 다케시마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산도는 다케시마가 아니다. 한국 측 논거는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의 주석이다. 주석에 “『여지지』에 이르기를 우산과 울릉은 모두 우산국 땅이다. 우산도는 일본이 말하는 송도이다”로 기술되어 있는 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문헌과 고지도 안의 우산도를 독도(다케시마)로 바꾸어 다케시마가 한국령인 증거로 삼아왔다.



한국=‘한국의 문헌과 고지도에 보이는 ‘우산도’는 독도다.’ 안용복 사건 이전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본문에는 큰 글씨로 ‘우산·무릉(于山武陵)’과 ‘우산도·울릉도’를 적고 있어 두 섬이 별개라는 인식이 정설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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