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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석방은 범죄자에 대한 시혜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5.05.28 00:44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용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의 성숙도는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낮은 위치에 있는 집단을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범죄자는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으로부터 비난받고 조롱받는 존재이므로, 사회가 범죄자를 대하는 모습은 곧 그 사회가 얼마나 성숙되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미셸 푸코는 명저 『감시와 처벌』에서 중세에 횡행하던 신체훼손형이 사라진 다음에는 범죄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감금형의 시대가 왔다고 봤다. 감금형은 일견 신체훼손형보다 인도적으로 보이지만 감시자는 치밀한 감시체계를 통해 결과적으로 재소자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신체가 감금돼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면 재소자는 큰 고통을 받는다. 감금형은 수형자에게 고통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정신이라는 점 외에는 신체훼손형과 다를 바가 없다.



 감금형을 이처럼 신체훼손형에 준하는 응보형으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심각한 재고가 필요하다. 형벌의 본질이 응보에만 있다고 본다면 형벌의 기능을 단면적으로만 이해한 것이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현대의 형사정책은 범죄자의 교화·회복·갱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헌법도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하고 있는바, 그 인간의 범주에 ‘재소자 또는 범죄자’를 제외시킬 어떠한 근거도 없다. 오히려 재소자라는 사회적 소외대상이란 점에서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에 기인한 낭만적 주장만은 아니고 형사정책적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수형을 마친 범죄자의 상당수는 전과자의 낙인과 수형생활 중 바뀐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감금을 형벌로 이해하고 감금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되면 어떠한 긍정적인 결과도 기대하기 어려우며 재범자만 양성할 뿐이다. 반대로 형기를 마친 범죄자가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해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게 되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유인이 현저히 낮아지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적어도 생계형 범죄, 자포자기형 범죄, 불특정 다수를 향한 원한형 범죄 등은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에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범죄자의 조속한 사회 복귀와 적응을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최초 확정된 징역형의 일부 기간이 지나면 수형자를 임시로 석방하는 가석방제도다. 가석방제도는 행실이 올바르고 수형 행적이 우수한 수형자를 조속히 사회에 복귀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석방제도의 핵심 가치다. 우리 법은 형기의 3분의 1이 넘으면 원칙적으로 가석방을 해줄 수 있도록 했다.



 가석방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수형자에게 희망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수형생활을 할수록 더 일찍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수형자에게 큰 자극이 된다. 이는 재소자로 하여금 교정시설 내 여러 재활활동, 봉사활동, 종교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적극 참여한 재소자는 출소 후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돼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로부터 용서를 받은 사람들은 받은 이상으로 다시 사회에 봉사하고 헌신하게 된다. 이것이 형사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돼야 할 것이다.



 가석방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가석방이 더 이상 형법 조문에만 남아 있는 화석화된 조항이어서는 안 된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가석방의 60%가량이 형기를 80~90% 이상 넘긴 재소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전체 출소자 가운데 가석방으로 출소한 사람의 비율은 10% 초반 수준에 불과하다. 가석방을 심사하면서 재소자의 적극적인 권리나 지위가 적절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또 법 집행을 천명으로 알고 있는 당국이 가석방 대상에서 형기의 3분의 1 경과라는 법 기준보다 관행을 앞세우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가석방은 오로지 국가 또는 교정시설이 재소자에게 베푸는 일회성 시혜조치로 격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여기에서 시작된 가석방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근거도 없고,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가석방은 재소자에 대한 시혜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재소자는 법이 정한 요건에 해당되면 가석방 심사대상이 되어야 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흉악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인면수심의 범죄자에 대한 엄벌주의의 목소리도 높다. 물론 범죄에 대해 1차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범죄자 자신이다. 그러나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사회와 국가도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가석방제도는 범죄를 방조한 사회와 국가가 자신의 책무를 사후적으로나마 다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칼은 범죄자를 처단할 때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묶여 있는 재소자의 포승을 잘라 낼 때도 쓰여야 한다.



이용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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