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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권력의 역설적 유산

중앙일보 2015.05.28 00:33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노무현 정치 방식은 파격이다. 그 속성은 의외성과 도발, 역설이다. 그것은 변칙과 돌출로 펼쳐진다. 그 행태는 상속됐다. 습관으로 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은 그 면모를 거칠게 드러냈다. 아들 건호씨의 추도사 내용은 기습이다. “전직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며 정상회담록을 피 토하듯 읽으시던 모습…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속절없이 당했다.



 추도사의 독설은 모욕적이다. 비아냥은 자극적이다. 그 파장은 길고 오래간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는 고약한 후유증이다. 그 장면은 노무현 정치의 어둠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적과 동지를 나누는 편가르기다.



 건호씨가 언급한 노무현-김정일 회담(2007년 10월)은 불쾌하다. 노무현 언어의 매력은 당당함이다. 기성 권위에 맞서는 순발력과 도전이다. 하지만 정상 회담록(2013년 공개)은 그 평판을 의심하게 했다. 평양에서 그는 일러바치고 비위를 맞추는 듯했다.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의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노무현의 언어 유산은 왜소해졌다. 북한의 자주는 위선과 폐쇄다.



 노무현 정치의 파격은 반전(反轉)을 예비했다. 그 시대의 기억은 복합적이다. 그 시절 반미 흐름은 거셌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역설이 등장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의외의 성취다. 그것은 한·미 동맹을 새롭게 확장했다. 그 현장에 상상력과 패기의 책사가 있었다. 김현종(통상교섭본부장)은 관료적 태만을 누르고 성사시켰다. 노무현의 유산은 다층적이다. 어둠과 밝음, 공과(功過)가 쪼개져 있으면서 얽혀 있다.



 노무현 시대는 자주와 평화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노무현의 평화는 단선적이지 않다. 그는 ‘무장 평화론’을 내세웠다. 그는 “평화는 미래의 이상 사회에선 가능할지 모르지만, 무장 없이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 무장과 평화는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시야 속에 구한말 역사가 있다. “힘의 공백상태가 되었을 때 한반도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전쟁터로 변했지 않았느냐. 외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놀이를 못하게 할 정도의 국방력을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2006년 12월 민주평통) 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다. 제주 서귀포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의 계획과 착수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핵심 참모(청와대 정책실장)였다. 원조 친노였던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노 대통령이 밤잠을 안 자고 고민과 구상을 한 끝에 나온 동북아 전략이 제주 해군기지다.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면 그 속에서 우리가 최소한의 방어력과 보복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 고민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에 대한 극복과 도전이다.



 2015년 동북아 정세는 격랑이다. 북방과 남방세력의 해군력 확장 경쟁은 치열하다. 중국의 해양 굴기(<5D1B>起)는 거침없다. 일본의 대응은 정밀하다. 미국의 중국 포위망은 촘촘해졌다. 미·일 동맹은 ‘신(新)밀월’로 굳건해졌다. 중국 국방백서(26일 발표)는 미·일 결속을 안보 위협 요인으로 경계한다. 동중국해 센카쿠(尖角 첨각, 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에서 중국과 일본의 긴장 상태는 진행형이다. 그 상황은 남중국해로 옮겨져 확산되고 있다. 남중국해에선 미국이 중국 견제에 앞장선다.



 이어도는 동중국해에 있다. 이어도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논쟁에 시달린다. 한·중 사이의 관할권 분쟁이다. 그 갈등은 잠복상태다. 그곳에 우리 해양과학기지가 있다. 주변 자원은 풍부하다. 이어도의 전략적 가치는 선명하다. 부산 해군기지에서 이어도는 멀다. 중국의 해군기지에서 가깝다.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달라진다. 거리가 줄어든다(174㎞). 우리 군함은 신속히 출동할 수 있다. 제주 기지는 돋보인다. 그 기지는 우리 해상교역의 생명선을 지킨다. 바다는 우리 역사의 진취적 상징이다. 신라시대 장보고 이래의 경험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의 야심작이다. 그의 죽음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이번엔 내부의 배신과 외면이다. 친노 세력은 노무현의 무장평화론을 묵살했다. 문재인 대표는 “참여정부 때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 그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했다. 제주 기지 건설 저지 세력은 집요하다. 그들은 “평화의 섬 제주도”를 외친다. 문 대표는 그쪽에 섰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고립, 수세적이다. 노무현의 평화는 개방, 공세적이다.



 제주 기지의 위용은 올해 말에 드러낸다. 그 모델은 하와이 진주만 기지다. 군항과 관광미항을 함께 추구한다. 제주 기지는 자주 안보의 명품으로 등장할 것이다. 노무현 유산은 역설로 작동하고 있다. 그 유산은 그의 반대 세력에게 상속됐다. 그들이 가꾸어 빛을 내게 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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