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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억짜리 ‘김기사’… 서울 길 헤매던 촌닭이죠

중앙일보 2015.05.28 00:09 경제 1면 지면보기
모바일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개발한 ‘록앤올’의 박종환(43·왼쪽)·김원태(44) 공동대표. 또 다른 창업자 신명진(41) 부사장은 출장으로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사업 총괄, 김 대표는 상품 기획, 신 부사장은 기술 개발을 전담해 회사를 키웠다. 2010년 자본금 1억5000만원으로 시작한 회사를 최근 다음카카오에 626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 2000년 어느 날 서울 화곡동 오피스텔 밀집지역. 서울에 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두 경상도 사내는 이삿짐을 실은 봉고차를 몰고 몇 시간째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낮에 이사 갈 집을 계약했는데, 밤이 되니 도통 길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두 사내는 짐도 못 풀고 인근 여관에서 밤을 보냈다. 당시 운전대를 잡은 이가 모바일 내비게이션 ‘김기사’로 유명한 ‘록앤올’의 박종환(43) 대표, 옆에서 지도를 펴고 내비 역할을 한 이가 김원태(44) 대표다.

다음카카오에 매각 벤처 대박
김기사앱 만든 박종환·김원태
“촌스럽게 지은 이름 덕 봐”
일본 이어 중국도 진출 계획



 서울 지리도 모르던 경상도 촌놈(?)들이 내비 하나로 벤처 대박 신화를 썼다. 지난주 626억원을 받고 다음카카오에 회사를 매각한 록앤올 창업자들의 얘기다.



 록앤올은 다음카카오의 자회사가 된 후에도 현 경영진 체제로 독립 운영한다. 김 대표는 “지분의 일부는 자사주 형태로 다시 받는다”며 “동기와 책임감을 불어넣기 위해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도 일정 지분을 나눠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박 대표는 1999년 서울에 올라왔다. 대학·대학원 동기인 김 대표가 살던 창신동 쪽방에 얹혀살았다. 햇빛도 안 들어오고 화장실을 여럿이 공동으로 쓰는 반지하 방이었다. 그러다가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보자’며 옮긴 곳이 앞서 말한 화곡동이었다.



 박 대표는 “그때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계약한 오피스텔이 여관 바로 앞에 있었다”며 “척척 길안내를 해주는 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고했다. 록앤올 공동 창업자로는 신명진(41) 부사장도 있다. 역시 같은 대학원 출신으로 이들은 2004년 ‘포인트아이’라는 벤처기업에서 함께 일하며 휴대전화 내비 서비스인 ‘K웨이즈’를 개발했다.



 이들이 창업을 결심한 때는 2009년 포인트아이가 내비 사업을 정리하면서다. 그간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를 버리기 아까웠다. 2010년 각자 퇴직금으로 받은 5000만원씩을 투자해 총 1억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주위에선 반대가 심했다. 당시에는 위치정보 기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대박 나는 아이템이었다. 더욱이 내비 앱은 이동통신사 서비스에 기본 탑재돼 이통사의 힘이 막강했다. 박 대표는 “유행을 타는 아이템보다는 우리가 잘할 분야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며 “수시로 막히는 교통환경에서 남들보다 더 빠른 길을 알려주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도정보를 사오고 서버를 운영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장 매출도 안 났다. ‘이통사가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어떻게 수익을 낼 거냐’며 창업투자사들은 퇴짜를 놓았다. 돈이 떨어지자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돈을 빌려 근근이 회사를 꾸려갔다.



 다행히 통신사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고, 독특한 벌집 모양의 화면으로 쓰기 편한 데다, 1분 단위로 교통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준다는 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창업 2년여 만에 투자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를 달린다. 김 대표는 “오랜 고민 끝에 이름을 촌스럽게 ‘김기사’로 지었다”며 “요즘 더 촌스러운 이름의 각종 서비스가 나오는 걸 보면 ‘작명(作名)’ 덕을 적잖이 본 것 같다”고 웃었다.



 록앤올은 해외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박 대표는 “일본에서는 이미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중국·동남아에서는 현지 파트너 기업과 시장 진출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글=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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