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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못 참고 먼저 지갑 여는 나, 어느새 호구가 됐네

중앙일보 2015.05.26 00:55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남 배려만 하다 지친 사람들

01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Q
(돈 없어도 낸다는 40대 주부) 40대에 접어든 주부입니다. 전 어느 모임에 가든 계산할 때, 다른 사람들이 눈치 보며 미적미적하면 제가 일어나서 계산해 버리고 맙니다. 문제는 제 주머니에 여유가 있어서 쓰는 거면 괜찮은데 돈이 없고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카드만 있는 날도 그런다는 겁니다. 차마 내가 돈이 없으니 대신 사라고 말을 못하는 거죠. 여동생은 ‘우리가 자랄 때 너무 가난해서 없는 사람 마음을 알기 때문’이라더군요. 그렇지만 제가 돈을 쓰는 걸 동네 친구들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남편은 제게 “물주가 됐네”라며 핀잔을 주니 속이 상합니다. 제가 옹졸한 것일까요·



A (친구를 가려 만나라는 윤 교수) 오늘 사연은 돈과 연관된 관계의 문제죠. 기본적으로 인간관계의 문제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마음이 잘 맞는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내 삶은 관계에 있어 성공적이란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마음 맞는 친구를 얻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거죠.



 먼저 지갑을 여는 마음, 남에 대한 배려라 생각합니다. 돈을 쓴다는 건 거기에 내 마음의 에너지가 함께 사용되는 거니까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에너지를 쓰게 되면 내 마음은 자동으로 보상을 바라게 됩니다. ‘자동’이란 본능이란 이야기죠. 가장 희생적인 관계인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자녀가 효도 안 하면 속상한데 하물며 동네 친구와의 관계에서 내가 100의 마음을 보여 줬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마음이 속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이기적이기에 자기 편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아마도 매일 얻어먹는 친구는 ‘상대방이 사기 좋아하나 보다, 내가 같이 먹어주니 고맙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옹졸하다 여길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내가 한 만큼 상대방의 보상을 원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마음 반응이니깐요. 관계에선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배려를 잘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번 쏘면 그다음에는 그쪽에서 쏴 주는 친구들을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02 기브 앤 테이크 해야 건강한 관계



Q
(도와주고 상처받는 30대 여성) 전 36세 미혼 여성으로 독립심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오지랖도 넓은 편이어서 사람들이 마음 아픈 소리를 하면 그냥 넘어가질 못하고 꼭 아는 척해서 도움을 줘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데 제가 도움을 줬는데도 상대방이 별로 고마워하지 않으면 괜히 도와줬다고 후회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상처를 참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대학 때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 저한테 강의 노트를 빌려달라 해서 빌려줬는데 그 후론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회사에서도 후배들이 아주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고 와서 물어보는 걸 보면 속으로 너무 화가 나지만 내색은 쉽게 하지 않습니다. 왜 항상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데 왜 나만 알려주고 도와줘야 하는지 가끔은 너무 억울하네요.



A (‘노’하는 용기 내보라는 윤 교수) 앞의 사연도 그렇고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뜻밖에 많습니다. 서로가 주고받는 관심과 배려가 정확히 5대 5로 균일하다면 이런 문제가 생길 일이 없는데, 사실은 대부분 관계가 더 주는 쪽과 더 받는 쪽으로 나누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며 우리는 스스로 설득하지만 사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를 않습니다. 도와준 만큼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커집니다. 감사의 말 한마디라도 듣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죠. 그런데 반대로 받는 쪽은 적응이 일어나 상대방이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기죠. 주는 쪽은 섭섭하고, 그래서 섭섭하다 하면 받는 쪽은 ‘생색 너무 내는 것 아니냐, 언제 달라고 했느냐’ 반응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관계는 모르는 사이보다 못해지기 쉽죠.



 그래서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것을 어느 정도 서로가 맞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독립심이 강하고 주는 것이 빠른 사람이라면 상대방도 나에게 줄 수 있게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쪽은 자신의 마음에서 상대방이 주는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적응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요.



 누군가에게 ‘노’(No)라고 쉽게 거절하시나요. 두 사연 안에는 거절을 잘 못하는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때론 거절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 거절을 잘 못하다 보니 하기 싫은 일도 자꾸 하게 되고, 주변과 스스로에 대해 짜증이 쌓여 스트레스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거절을 잘 못한다는 것, 본인은 불편하지만 나쁘다고 볼 수 없는 행동이죠. 거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으니깐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는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담겨 있죠. 부탁할 때마다 싫은 표정 짓고 ‘노’하는 사람보단 웃으며 ‘예스’라 받아 주는 사람한테 우리는 마음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항상 예스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싫은 요구까지 다 들어주다 보니 화병에 걸릴 정도로 거절을 잘 못하는 분들의 내면에는 자신이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하면 상대방이 내 존재 자체를 거부하지 않을까 하는 거절 공포가 존재합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뚜렷해지기에 그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질 때 내 존재감이 약해진다는 불안감이 찾아오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감에 지나치게 좌우되면 삶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때론 거절 공포를 극복하고 ‘노’하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영어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말 그대로 주고받는다는 뜻입니다. 공평한 조건에서의 교환·협조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비즈니스에서 주로 쓰는 말이지만 마음 비즈니스에서도 ‘Give and take’는 중요합니다. 남에 대한 배려와 더 나아가 희생은 훌륭한 덕목이지만 그 행동들이 내 마음에 분노와 슬픔을 안겨 주고 있다면 내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적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부탁 잘하는 분과 거절 잘 못하는 분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흔합니다. ‘친구야 넌 항상 너무 착하고 관대해, 내 부탁 좀 들어줄래’라 이야기하면 거절 못하는 친구는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거절하면 나는 못되고 편협한 사람이 되니까요.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면 부탁하기 전에 고민하죠. 이 부탁이 내 친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고요. 상대방 처지에서 Give and take를 고려하는 거죠. 계속 마음 편치 않은 요구를 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요구를 내가 계속 들어 주고 있다면 거절에 대한 불안이 큰 편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거절에 대한 지나친 불안엔 세상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얼마나 많은가보다는 서로 배려해 주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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