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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24시간 분만실 운영 … 타 지역서도 찾는 ‘출산 허브’

중앙선데이 2015.05.24 00:19 428호 6면 지면보기
지난 19일 전남 강진의료원 산부인과 문영주 과장(오른쪽)이 초음파 검사로 태아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 강진=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18일 전남 강진군엔 장맛비 같은 굵은 비가 내렸다. 궂은 날씨에도 해남·장흥·영암 등 인근 지역에 사는 산모들이 강진으로 모여들었다. 강진의료원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다. 강진의료원 건물 정면엔 ‘산부인과를 24시간 운영하고 있습니다’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에선 산부인과 전문의 3명이 24시간 교대로 상주한다.

[무너진 출산 인프라] 지자체에서 찾은 해법

이날 진료실을 찾은 웅엔 티 삐엔(27)은 20㎞ 떨어진 장흥에서 남편과 함께 왔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그는 이달 27일 출산 예정인 만삭 산모다. 산부인과 정병순 과장이 몸을 굽혀 그녀의 발목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발목이 더 붓지는 않네요?”
“다리는 좀 괜찮아요. 근데 허리가 아파요.”

정 과장이 웅엔의 걱정을 덜어주며 위로했다.

“어떡하죠? 그건 제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는 건데…. 가능한 대로 움직이세요. 그러다 누워서 쉬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나온 웅엔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해서 기분이 좋다.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고 설명도 잘해준다”며 웃었다. 웅엔의 남편 방극천(49)씨는 “의료원이 없으면 목포나 광주까지 1시간 이상 진료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군은 인구가 3만9000명에 불과한 조그만 농촌이다. 군민 중 1만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하지만 강진에는 아기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강진의료원 산부인과가 2011년 문을 연 이래 올 4월까지 468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지역별로는 강진이 36.3%로 가장 많고 장흥(27.8%), 완도(17.5%), 해남(10.5%) 순이었다. 지난해는 한 달에 평균 10명이 넘는 145명이 이곳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강진과 인근 지역의 출산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기준으로 해남(2.34명), 영암(2.15명), 강진(1.98명)이 전국 1~3위에 올랐다.

이날 퇴원 수속을 밟은 김경옥(41)씨는 “강진의료원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출산 예정일에 앞서 갑작스레 양수가 터졌는데 당직 전문의가 바로 분만을 도와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12살 아들과 11살 딸은 친정인 서울로 올라가 낳았는데 셋째 아이는 큰 불편 없이 이곳에서 낳았다”고 말했다.

낮은 수가에 분만병원 10년 새 반토막
강진의료원의 성공 이면에는 ‘분만 인프라 붕괴’라는 암울한 현실이 있다. 강진군은 2009년부터 1억원 지원을 약속하며 산부인과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이곳까지 오겠다는 의사가 없었다. 가까스로 2011년 9월 보건복지부의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에 선정돼 강진의료원 안에 산부인과를 유치하게 됐다. 분만취약지는 1시간 내 분만율이 30% 미만이고, 가임여성이 인구의 30% 이상인 곳을 말한다. 지역 내 병원을 선정해 연간 운영비로 5억원을 지원한다. 매년 공모를 거쳐 대상을 정한다. 지금까지 11곳의 분만 시설이 선정됐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보육수당·아동교육비·불임치료 지원 등 저출산 관련 분야에 연간 15조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 기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저출산 고착화가 분만 인프라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분만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은 10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선 출산율이 반등해도 걱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인구정책연구실장은 “국가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하는데 정작 분만시설은 없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인적(의사)·물적(병원)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부인과 전문의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전문의 수는 2007년까지 매년 200명을 넘다가 불과 3년 만인 2010년 이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강서 미즈메디병원의 지현영 과장은 “산부인과는 24시간 당직체제가 가동돼 의대생들이 기피한다”며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고도 간단한 검사와 진료만 하는 의사가 많아져 분만 시설과 인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분만 비용(수가)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된 것도 산부인과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취약지역 산모를 위한 안정적 진료 및 분만 지원 방안 연구(2013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분만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낮다. 일본의 5분의 1, 독일·프랑스의 3분의1 수준이다. 이 연구의 책임자인 서울아산병원 김암 교수는 “예전엔 제 나이(61)에 아이를 받는 의사가 없었다”며 “우리는 ‘이게 운명이려니’ 생각했지만 요즘 젊은 의사들은 ‘일은 힘든데 벌이는 시원찮다’며 지원을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분만수가를 올리는 문제를 고민 중이다. 올 2월까지 1년간 분만수가 가산사업을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분만 건수가 적은 병원에 수가를 50~200% 더 얹어 주는 것이다. 문을 닫는 산부인과를 줄여보겠다는 취지에서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하는 대로 가산수가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분만 취약지엔 공공의료가 바람직
산부인과 진료비를 올려주더라도 당장 전문의 배출 확대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전히 지방에서는 아이를 낳기 위해 1~2시간씩 산 넘고 물 건너 원정출산을 해야 한다. 지난 17일 경남 사천에선 한 산모가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했다. 집 근처에 분만 가능한 시설이 없어 1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다행히 산모와 아이는 모두 건강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전국 시·군·구 가운데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곳은 전남 10곳, 경북·경남 각 9곳, 전북·충북 각 6곳 등 55곳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 강화를 주문한다. 삼성서울병원 오수영 교수는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은 ‘밑 빠진 독’이라도 물은 계속 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절박함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이마저도 없었다면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을 수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오 교수는 “지난해에는 분만보다는 외래 진료 중심으로 지원 기관이 선정됐다”며 “분만 인프라를 더 늘리는 쪽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모성사망비를 낮추는 등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만취약지 사업의 지원 대상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분만 병원과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진료만 하는 외래 병원으로 나뉜다. 지난해 지정된 외래 병원은 7곳이지만 분만 병원은 2곳에 불과했다.

분만취약지에서는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실장은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산부인과의 공백을 긴급비상사태로 인식해야 한다”며 “민간 자원으로 위기 돌파가 어려우면 산부인과만큼은 공공의료 영역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 수급이 어려운 지방 공공의료원에는 정년이 임박한 교수나 은퇴한 산부인과 의사를 고용해 직접 진료를 하지 않더라도 연륜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박영걸 강진의료원장은 “강진과 인근 지역은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변변한 출산 시설이 없었다”며 “분만취약지 내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지방의료원 관계자는 “산부인과나 분만시설이 감소하는 것은 저출산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공공의료기관들이 이를 보완해야 한다”며 “분만기관에 지원하는 연간 5억원은 의료진 인건비를 충당하는 데도 부족해 정부가 지원을 늘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강진=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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