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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전 독일 총리 인터뷰] “병든 남자 독일을 건강한 여자로 만든 건, 노동·연금 수술”

중앙일보 2015.05.22 02:11 종합 4면 지면보기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71)는 ‘뚝심과 소신의 사나이’로 불린다. 그는 총리 시절 ‘어젠다 2010’으로 불리는 총체적 국가 개혁을 추진했다. 소속당인 사민당(SPD)과 지지 기반인 노동계는 격렬히 반발했다. 중도좌파 성향인 사민당 노선과 상반된 우파 정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슈뢰더는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 전락시키는 통일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65세 연금 받는 나이 올리고 실업 급여보다 일자리 지원 집중
국가는 일할 수 없는 사람만 책임
인기 없는 개혁에 선거 졌지만 정치인은 사익보다 국익 생각해야



 덕분에 현재 독일 경제는 상한가를 치고 있지만 슈뢰더는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무릅쓴 탓에 지지율이 급락했다. 결국 ‘어젠다 2010’ 추진 2년 만에 총선에서 패배,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식장엔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가 울려 퍼졌다. 21일 제주포럼에 참석한 슈뢰더 전 총리를 인터뷰했다.



 - 총리 시절인 2003년 3월 14일 연방의회에서 ‘어젠다 2010’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을 일으키려면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것 외엔 길이 없었다. 개혁의 골자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연금과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병든 남자였던 독일이 오늘날 건강한 여자가 됐다(웃음).”



 - 개혁에서 역점을 둔 대목은.



 “우선 노동시장을 바꿔야 했다. 노년층의 일자리와 젊은이들의 취업 기회가 동시에 확보되게끔 해야 했다. 다음으로 연금 수령 연령을 높여야 했다. 재정을 고려할 때 65세는 턱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중요한 게 개혁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 개혁을 밀어붙인 끝에 총리직을 잃었다.



 “어떤 정치인이 총선에서 지고 싶겠나. 나 역시 인기 없는 개혁을 밀어붙이면 낙선할 우려가 크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익이 더 중요하다. 정치인은 사익보다 국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 당신의 노동시장 개혁정책인 ‘하르츠법안’은 한국 기업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실업 급여에 돈을 쓰기보다 일자리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일할 역량이 있는 사람은 일하고, 나이나 병 때문에 일을 못 하는 사람에게만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 개혁 과정에서 독일도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조직이 역할을 했나.



 “개혁 초기에 비슷한 조직이 있었다. 정부와 노조·사용자단체가 참여했다. 그런데 사용자단체나 노조가 정부에 요구만 할 뿐 합의를 도출하는 데는 열의를 안 보였다. 결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 최근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다행히 독일에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청산작업이 있었다. 일본도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책임을 느끼길 바란다. 특히 (태평양)전쟁 중 한국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적 가혹 행위에 대해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 위안부 문제를 의미하나.



 “‘위안부’란 말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다. 너무 완곡한 어법이다.”



 - 한국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박 대통령은 지난해 드레스덴 선언에서 통일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통일 비용이 엄청나다는 걸 예상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통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통일은 비용뿐 아니라 기회도 준다. 통일되고 민주화된 북한은 큰 시장이다. 통일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남북 연방(confederation)’ 수준이 아니라 한국과 똑같은 체제가 돼야 한다. 지금의 북한 정치 체제는 사라져야 한다.”



 슈뢰더 전 총리는 제주포럼 직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특별대담에서 “(자신이 추진한 ‘어젠다 2010’과 관련) 의회에서 정부의 개혁 조치를 법률로 중단시켰고 사임하라는 압력까지 넣었지만 지도자라면 결정을 해야 할 시점에서 결단을 피해선 안 된다. 대신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지’ 끊임없이 설득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어젠다 2010’을 시행하기까지 저항을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인터뷰=유권하 코리아중앙데일리 편집인(전 중앙일보 베를린 특파원), 정리=김사라·김영민 기자 kim.sarah@joongang.co.kr





71세 슈뢰더 “아홉 살 막내 아들과 요즘도 축구”



지난해 칠순 잔치를 한 게르하르트 슈뢰더(사진) 전 독일 총리는 네 번의 결혼으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지난 3월 이혼한 네 번째 부인이자 20세 연하의 전직 잡지기자 도리스 쾨프(51)와 결혼 중이던 2004년과 2006년에 입양한 러시아 출신 고아 2명을 포함해서다. 그는 21일 인터뷰에서 “큰딸이 24세고 나머지는 14세, 13세, 9세에 불과하다”며 “자식들이 어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아들과 축구를 할 수 없는 때가 온다면 나이를 의식하게 될 것 같다”며 “2년 전 별세한 어머니가 99세까지 사셨으니 나도 장수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1944년생인 슈뢰더는 나치군 병사였던 아버지가 그해 루마니아 전선에서 전사한 뒤 편모 슬하에서 다른 4형제와 함께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가족들을 위해 먹거리를 훔쳤고 집을 찾아온 빚쟁이들과 싸우기도 했다. 어린 시절 홀어머니에게 “벤츠를 태워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총리가 된 뒤 지켰다.



 요슈카 피셔 전 외무장관과 더불어 대표적인 ‘68세대(68년 유럽을 휩쓴 학생운동)’ 정치인이다. 준수한 용모와 뛰어난 화술, 정확한 발음으로 유세장을 주름잡았다. ‘미디어 총리’ ‘언어의 연금술사’란 별명이 있다. 98~2005년 제7대 독일 총리에 올랐다. 99년부터 5년간 당 대표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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