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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말고 '김대리'가 좋아서

온라인 중앙일보 2015.05.20 12:13



Working Romance

[엘르] 가장 가까이에 내 짝이 있다는 말은 진짜일까? 회사 안에서 이름도 모르는 어떤 직원을 나도 모르게 눈여겨본 경험은 누구나 있겠지만, 실제 연애로 이어지는 건 다른 얘기다. 그가 복사하는 모습이 섹시해서, 그녀가 전화받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다른 팀으로부터 좋은 소문이 들려와서? 사내에서 연애해 본 이들에게 비밀의 추억을 물었다.









사랑은 사내 메신저를 타고

회사 안에서 사내 메신저만 허용되는 대기업에 다니는 S는 소싯적에 PC통신 채팅방에서 연애가 꽃피었던 것처럼 사내 메신저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S는 사보 팀에 근무하고 그는 문학 청년 출신인지라, 입사 동기 모임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출근하자마자 메신저 창을 열었고, 퇴근할 때 닫았다. 점심 메뉴 정하는 데만도 30여 분씩 대화가 이어지고, 시시콜콜한 수다, 말꼬리 잡는 말장난까지 두 시간씩 떠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연애 몇 개월 만에 남자는 점차 짧은 답만 남기거나 S의 질문 뒤에 대답이 없어졌다. 일상에서 빠진 ‘남자’보다 ‘수다’의 상실감이 컸던 S는 그와 나눴던 ‘저장된 대화목록’을 읽고 있거나 그가 로그인돼 있지 않을 때 불안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메신저로 흥한 연애, 메신저로 접고 난 후, S의 사내 메신저는 버전 업그레이드조차 안 되고 있다. (33세, 대기업근무) 



사내 부부

연애할 땐 각자 다른 직장에 다녔지만, 결혼한 후, 그것도 신혼이 훨씬 지난 후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L. 그의 말에 의하면 연애 때만큼 설레는 일화는 당연히 없지만 사내 부부의 장점도 꽤 있다. 일단 상사나 동료에 대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뒷담화. 싸잡아 욕하는 것 말고,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타 직장이었다면 건성건성 들었을 것도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건 남 욕해서 좋은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공감대가 확 올라가는 순간에 대한 즐거움이다. 또 공개 연애를 넘어선 부부이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L과 아내를 대할 때 상대방을 자동 의식하는 것도 때론 편하다. 실수했을 때, 기획이 별로일 때, (조금) 지각했을 때,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 잘못은 덜 지적당한다. 1시간에 달하는 출퇴근까지 같이 하는 것의 지루함? 서로를 베고 잠들기 때문에 상관없다. 하지만 L이 깨달은 건 하나 있다. 서로의 직장 업무에 대해 섣불리 충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아내의 통화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집에 와서 말했다가 부부싸움 대차게 할 뻔했다. 일과 가정의 경계선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걸 뼈에 새겼다고. (36세, 기자)



은밀한 비상구

졸업 후 첫 직장, 한 부서 내의 사수였던 남자와 L은 죽이 꽤 잘 맞는 콤비였다. 시간이 갈수록 친해지면서 업무평가도 점점 좋아지니 그에 대한 신뢰가 무한히 올라갔고 호감으로 발전했다. 사내 연애의 결정타는 남들도 그렇겠지만 회식인데, 짓궂은 상사가 권하는 술을 게임인 듯 교묘하게 다 받아준 그와 눈이 맞을 줄은 다들 ‘꽐라’가 되어 아무도 몰랐다. 비밀 연애의 묘미는 1초 애정 표현이다. 회의 시간 1초 눈맞춤, 복도를 지날 때 1초 스킨십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결정적 장소는 비상구 계단.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에서(CCTV가 없는!)의 키스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택시 타고 외근 가며 앞좌석에 앉은 상사 몰래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손가락만 걸고 있던 적도 있다. 둘 다 자정이 가깝도록 야근한 날 근처 모텔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급하게 옷을 사 입고 출근한 얘기까진 안 하는 게 좋으려나? (34세, 광고기획자)



전 직원 연수 기간

사내 다른 부서와 섞어서 조를 짜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한 팀이 된 남자와 친해진 지 며칠 안 돼서 ‘잤다’. 그 이후가 문제였는데, 남자는 회사에서 C와 마주칠 때마다 엘리베이터에 자기 쪽으로 살짝 끌어당기거나, 실없는 농담을 하며 팔을 툭툭 치거나, 은근슬쩍 말을 놓아버렸다. C가 주의를 줘도 남자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금방 헤어졌지만, C는 이후에도 사내에서 계속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는 남자를 오랫동안 피해 다녔다. (28세, 마케터)



그다지 관심도 없었는데

주위 다른 동료들이 몰아간 탓에 어물쩍 연애가 시작된 케이스의 K. 하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비밀 연애는 폐해의 온상이었는데, 상대가 근무하는 부서로 뻔질나게 드나들며 쓸데없는 사담을 나누는 일이 잦아진 데다, 그가 출근 전이거나 먼저 퇴근했을 땐 일의 능률이 ‘제로’였다. 그의 책상에 음료수라도 하나 올려놓았다간, 여중생처럼 안달복달하는 통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나 등 떠밀려 시작한 연애는 금방 식었다. 헤어진 후엔 헤어진 대로 꼴도 보기 싫은 날들이 이어졌다. 서로를 ‘쉽게 봤다’는 것 때문에 업무에서 치사하게 비협조적으로 굴거나, 남에게 험담을 하는 등 인간의 바닥을 보고, 보인 기분이었다. (34세, 웹디자이너)



사내 연애 마니아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른 계열사의 그에게 반한 후 수개월간 사소한 우연을 만들어 티 나는 구애 끝에 연애에 성공한 Y. Y에 따르면 대기업은 직원이 많고 비밀 연애를 사수하기 쉬운 분위기라 숨기느라 진땀 빼지 않고도 사귈 수 있다. 이른 출근시간에 맞춰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같이 먹으면 다정함이 배가돼서 좋았고,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좀 더 예쁘게 차려입고 즐겁게 출근할 수 있는 데다 덤으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자신도 모르게 상냥하게 대해 칭찬도 많이 받고 삶 자체에 활력이 생겼다. 좋은 얘긴 여기까지. 다른 팀 여직원들이 남자친구에 대해 떠드는말도 필터 없이 듣게 되고, 평일 내내 붙어 있으니 주말엔 데이트가 뜸해지며, 업무와 스케줄을 꿰고 있는 탓에 서로 참견이 많아지는 것도 힘들었다. 헤어진 후 어느 날 잊고 지내던 그의 이름으로 날아온 회사 전체 메일은 그의 e-청첩장과 첨부된 결혼사진이었다. 진심으로 퇴사하고 싶었다. 심지어 그는 사내 연애 마니아였는지, 또 다른 사우와 결혼했다. 사내 직원 정보망이란 판도라의 유혹에 당연히 넘어간 Y는 덕분에 전 남친의 현 여친의 얼굴과 나이 등 모든 정보와 빛나는 실적, 직원들 간의 좋은 평판까지 알게 됐다. (32세, 대기업근무)



장모님의 철벽 수비

사내 커플이 꽤 많고 은연중에 연애를 권장(?)하는 분위기의 회사를 다니던 P는 사내 연애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던 중 관련 부서끼리 ‘다 같이 야근하고 술이나 한잔’ 하다가 지금의 아내와 오고가는 술잔과 심상찮은 눈빛 속에 연애를 시작했다. 회사가 있는 강남을 피해 여자가 사는 영등포 근처에서 데이트하다가 누굴 만났을 땐 그나마 발뺌이 가능했지만 평일에 놀이공원에서도 팀장과 마주쳤으니,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었다. 다들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 연애가 이어지다 마침내 결혼까지 성공했는데, 이 결혼의 숨은 주역은 황당하게도 장모님. 회사 동료와 사귄단 말을 듣고서 연애 100일 만에 미래의 장모님께 인사드려야 했고, 1년도 채 안돼서 결혼이 추진됐다. 어린 아내가 사내 커플 후유증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장모님 덕분에 결혼해서 좋은 점? 사내 연애 기간 내내 남은 일이 없어도 그녀의 야근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 그녀를 바래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왕복 40km, 택시비 6만원의 여정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30세, 웹개발자)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H는 부점장으로 근무하는 남자에게 근무 외 시간까지 커피를 배우다 사랑에 빠졌다. 드라마처럼 나만을 위해 라테에 하트를 그려주는 남자라니, 남 얘기일 때 오그러들던 게 자기 얘기가 되니 그리 좋을 수 없었다. 의외로 적은 손님. 자주 왔다며 여자 손님들이 남자에게 다정하게 말 시키는 꼴을 웃으면서 보고 있기란…. 또 컴플레인하는 손님이 남자에게 도끼눈을 뜨고 따지는 걸 끼어들지 않고 듣고 있기란…. 살다가 겪은 H 인생 최고의 고역이었다. 자신의 ‘선별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건 누구나 똑같은 마음일 텐데, 늘 목격자가 되는 것이 미안했다. (30세, 바리스타)



에디터 엘르 이경은, 사진 SHUTTERSTOCK, 디자인 엘르 최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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