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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진출 외국기업 351개 … ‘은자의 왕국’ 빗장 연 돈의 힘

중앙일보 2015.05.19 01:48 종합 4면 지면보기



한반도 경제 르네상스 <중> 특구로 남북 경협 돌파구 열자
늘어나는 외국인 대북 투자 명암
독일 DHL, 영국 여행사 등과 합작
북, 2조5200억 외국자본 끌어와









#1. 미국인 그래픽디자이너 조시 토머스(28)는 2013년 4월 6~14일 북한 평양에서 자신만을 위한 ‘맥주 투어’를 했다. 맥주 애호가인 그가 영국인이 설립한 북한 전문 여행사 ‘영 파이어니어 투어(Young Pioneer Tours)’에 의뢰한 맞춤 여행이다. 그는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곳도 아닌 북한에서 맥주 투어를 하다니 내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며 평양 시내 대동강맥주 양조장과 낙원백화점, 양각도 국제호텔이 내놓은 맥주의 풍미가 한국 맥주보다 다양하고 뛰어났다고 전했다.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을 ‘미스 유(Miss Yoo)’라고만 밝힌 여성이 그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토머스는 “미스 유는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쳤다”며 “김일성 배지를 달았다는 점 외엔 서울의 여느 젊은 여성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2. 1997년 11월 5일 북한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 독일 운송전문업체 DHL의 평양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DHL은 북한 조선무역운송회사(KFTC)와 계약을 하고 평양·원산·남포·함흥에서 운송 서비스를 맡고 있다. 북한 축구팀이 외국팀과 친선 경기를 벌일 때 후원 업체로 등장하기도 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지난 1월 말 ‘북한에서 사업하기’를 주제로 연 국제학술회의에서 제임스 민 DHL 상무는 “북한 전문가들도 스웨덴·독일·중국·싱가포르 등에서 교육을 받는 등 국제기준을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적으로 ‘은자의 왕국’으로 통하는 북한이지만 자본의 힘은 이 왕국의 빗장도 열었다. 2012년 미국 국가정보국에 따르면 2004~2011년 북한 기업과의 합작 형태로 북한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351개다. 중국 기업이 약 75%인 205개다. 351개 기업 중 투자 규모가 확인된 기업은 88개, 투자 금액은 23억2000만 달러(약 2조5200억원)로 추산됐다. 미 국가정보국이 파악한 것 외에도 북한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의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영 파이어니어 투어’나 ‘고려투어(Koryo Tours)’처럼 영·미 국적의 외국인이 개인적 흥미로 시작했다가 북한 전문 여행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다.



 현대경제연구원과 북한자원연구소 등에 따르면 중국·영국·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이집트·태국·싱가포르 국적 기업가들이 북한을 무대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대북 교육·투자 사업을 하는 ‘조선 익스체인지(Choson Exchange)’의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 이사는 “북한은 경제개혁 조치와 경제특구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 차단을 명목으로 외국인을 격리시켰으며 우리와 별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됐다”며 “소통 부족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함경북도 무산 광산에 투자했다가 북한의 일방적인 ‘자원세(稅) 25%포인트 인상’을 통보받은 중국 시양그룹(西洋集團)은 철수를 결정하면서 ‘북한에 투자하면 안 되는 이유’를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경남대 임을출 교수는 “남북 관계 불안정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점을 의식한 북한 진출 기업인들이 북측에 정치 안정에 대한 요구를 계속할 것”이라며 “대북 투자와 협력을 늘리는 것 자체가 북한의 불안정 요소를 관리하는 게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준술·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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