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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 남편과 갈라서라니 “앗싸” … 쿨한 이혼 는다

중앙일보 2015.05.19 01:26 종합 14면 지면보기
“앗싸!” 지난달 말 서울가정법원의 한 법정. 재판부가 “이혼 조정이 성립됐다”고 선고하자 30대 초반 여성인 A씨가 나지막한 외마디 환호성을 올렸다. 두 살 많은 남편 B씨의 표정은 덤덤했다.


성격검사 등 조정 거치며 갈등 완화 … 소송 접고 원수 아닌 친구로 헤어져
전문 가사조사관·상담가 개입으로 자녀 양육·위자료 문제 원만 해결

 두 사람은 2011년 프로야구 동호회에서 처음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러나 4년간의 결혼생활에서 그나마 맞았던 건 야구에 대한 관심뿐이었다. 두 사람은 특히 집안 살림을 놓고 갈등을 빚곤 했다.



 지난해 가을 육아 문제로 심하게 다툰 뒤 남편 B씨가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부부를 조정에 회부했다. 3개월간 10여 차례 전문가 상담이 이어졌으나 두 사람은 끝내 “함께 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 본 영수증을 보며 시시콜콜 타박하는 남자와는 못 살아요.”(아내 A씨)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집에 부르고 한 달 경조사비만 수십만원 쓰는 여자는 참기 힘드네요.”(남편 B씨)



 부부는 조정 과정에서 성격 검사 등을 거치며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이들은 성격 차이를 인정하고 관계가 상당 부분 복구된 상태에서 갈라섰다. 아내 A씨가 아들을 키우기로 했다. B씨는 양육비를 보내주고 한 달에 두 번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



 ‘쿨한 이혼’이 늘고 있다. 이혼 소송을 냈다가 조정을 통해 원만하게 이혼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이혼 사건에 대한 조기 선별 절차를 거쳐 조정에 회부하는 ‘신(新) 가사사건 관리모델’을 지난해 본격 도입한 서울가정법원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조정이혼 성립건수는 17일 현재 203건으로 집계됐다. 2013년 연간 110건에 비해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가정법원은 이혼 사건을 ▶성격 갈등 ▶부정행위 ▶재산 분할 ▶황혼이혼 ▶다문화가정 등으로 세분화한 뒤 전문 가사조사관과 상담위원을 통해 소송 가정의 갈등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지난해 말 결혼 13년차였던 C씨(42) 부부도 조정 끝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남편 C씨가 동료 여직원과 ‘딴살림’을 차린 걸 알게 된 D씨는 초등학생, 중학생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1년 넘게 두 딸을 남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대학원까지 그만두고 남편 뒷바라지를 해온 그녀에게 남편의 불륜이 던진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위원이 아이들의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걸 알려주고 그의 공허함에 공감해주면서 D씨의 분노가 옅어졌다.



 가정법원 관계자들은 “20~30대 등 젊은 부부일수록 조정 기간도 짧고 뒤끝 없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지난 3월 결혼 1년6개월 만에 이혼 도장을 찍은 30대 부부는 각기 ‘남편이 아이 갖기를 원치 않는다’ ‘장모가 아내와의 잠자리 횟수까지 간섭한다’는 이유로 재판상 이혼을 원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엔 뜻을 굽히지 않았으나 두세 차례의 조정 끝에 이혼에 합의했다. 강은숙 상담위원은 “서로를 비난하면서 끝까지 단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과거의 이혼 패턴이었다면 요즘은 상담만 제대로 이뤄지면 의외로 이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서울가정법원 가사사건의 조정·화해율은 34.3%로 전국 법원 평균(24.7%)보다 9.6%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신 가사사건 관리모델을 전국 법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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