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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맛 우정 키웁니다, 탈북·남한 청년들

중앙일보 2015.05.19 01:07 종합 20면 지면보기
탈북 청년 김나단씨(왼쪽)와 강원대 학생 김성열씨가 벌통에서 틀을 꺼내 벌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이달 말 처음으로 꿀을 채취할 예정이다. [사진 두드림 아카데미]
지난 12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도심의 한 야산. 그물이 달린 모자를 쓴 청년 두 명이 벌통 안에서 틀을 꺼내 뭔가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 탈북해 춘천에 정착한 김나단(27)씨와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원대 무역학과 3학년 김성열(23)씨였다.


“토종 꿀벌 함께 되살려보자”
두드림 아카데미 탈북 청년들
강원대생 5명과 의기투합
지난달 벌 사들여 양봉 시작

 이들은 혹시 여왕벌이 새로 생겼는지 살피는 중이었다. 김나단씨는 “봄철에 꿀벌이 늘면 여왕벌 애벌레가 태어난다”며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벌집을 살피던 곳은 한국과 탈북 청년들이 합심해 만든 양봉농원이다. 직업대안학교 ‘두드림 아카데미’에 다니는 탈북 청년 5명과 강원대 사회공헌 동아리 인액터스 소속 대학생 5명이 농원을 설립했다.



 양봉농원을 만드는 프로젝트 이름은 ‘벌치기 소년, 소녀’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11월 인액터스 학생들이 ‘탈북 청년들을 도울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에 두드림 아카데미를 찾으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탈북 청년들이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도록 학습 지도를 하고 여가 활동을 함께하면서 우정을 쌓아갔다. 그러다 탈북 청년들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 없을까 싶어 머리를 맞대게 됐다. 그러면서 “사라져가는 토종 꿀벌을 같이 되살려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올 2월엔 양봉 기술을 가르쳐주는 원주시 어반비즈 아카데미를 찾아가 양봉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았다. 3월에는 사업 종잣돈 400만원도 마련했다. ‘벌치기 소년, 소녀’ 프로젝트가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는 단체인 ‘남북하나재단’의 민간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다.



 지난달 중순 종잣돈으로 벌통 10개와 벌 30만 마리를 사들였다. 양봉농원 자리는 지인에게 공짜로 빌렸다. 원래 돼지농장이 있다가 사업을 접은 곳이다. 주변에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이곳을 점찍었다고 한다. 농원을 차린 뒤 강원대 학생들과 탈북 청년들은 매주 2, 3차례 회의를 하며 판매 전략까지 논의했다.



 현재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꿀벌들이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다. 별 이상이 없으면 이달 말에 처음 꿀을 뜨는 ‘채밀’ 작업을 할 예정이다. 15㎏ 정도 수확을 예상하고 있다. 이 꿀은 6·25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에 춘천에 살고 있는 탈북 주민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이들은 꿀을 수확하는 것뿐 아니라 꿀 채취, 밀랍초 만들기 등을 초등학생용 방과 후 과정으로 꾸미겠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북한 출신 방민혁(23)씨는 “이런 활동을 통해 초등학생들에게 다가가다 보면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 청년과 강원대 학생들을 연결한 두드림 아카데미 김영우 이사장은 “남북 청년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성과”라 고 말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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