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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면 닿을 듯 …‘거실극장’ 실감나네

중앙일보 2015.05.19 00:57 종합 23면 지면보기
김동수 배우가 서울 연지동 자신의 집에서 연극 ‘인생’ 리허설을 하고 있다. 그는 “경비도 절감되고 공간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 집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에어컨과 커튼·방석 등 ‘극장 시설’은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마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연극배우 김동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살아간다는 건 수고스런 일이지. 인생은 결국 모든 게 사라지는 거야.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난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옆집에 배우가 산다’프로젝트
원로 배우 김동수 1인극‘인생’
다세대주택 2층 자택서 공연
관객들 “코앞에서 연기해 생생”



 서울 종로구 연지동 다세대주택 2층. 원로 연극배우 김동수(68)의 목소리가 16.5㎡(5평) 남짓한 거실·주방에 묵직이 깔렸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인생』을 1인 낭독극으로 각색한 연극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다. 국공내전·문화대혁명 등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늙은 소를 의지하며 사는 노인 ‘귀복’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에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있던 열댓 명 관객들도 함께 숨을 죽였다.



 김동수 배우는 주인공 귀복과 아내 가진, 딸 봉화와 아들 유경, 사위 석이와 손자 고근 등의 역할을 이리저리 오갔다. 장면이 전환될 때는 쇠막대로 놋그릇을 두드려 신호를 줬고, 귀복이 유경을 때리는 장면에선 죽비를 내리쳐 효과를 더했다. 중간중간 CD 플레이어를 조작해 음악을 트는 것도, 조명의 밝기를 조절하는 것도 배우의 일이었다. 11일 공연을 관람한 회사원 김효선(45)씨는 “음악이 제때 나오지 않는 등 미숙한 상황도 있었지만 배우의 연기를 코앞에서 볼 수 있어 연극의 아날로그적인 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김동수 배우의 연극 공연이 열린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사장 박정자)이 ‘원로연극인 활동수명 연장’을 위해 이달부터 추진하는 ‘옆집에 배우가 산다’ 프로젝트 중 하나다. 한 명의 배우가 조명·음향·의상 등 스태프 역할까지 하면서 자신의 집 혹은 집 근처 카페·교회 등에서 공연한다. 김씨 외에도 박정순·임정일·이승호·이성훈 등 60대 배우 네 명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재단 측이 각 배우들의 ‘극장’을 꾸며주면, 배우들은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리고 티켓 수익(1장 1만원)을 가져간다. 재단의 이경민 사무국장은 “원로배우들의 ‘하우스 극장’이 쉽게 연극을 즐길 수 있는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잡으면, 배우들의 생계 고민을 덜 수 있는 노후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옆집에 …’ 프로젝트는 나이 든 연극인들이 설 무대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연극계 고민에서 출발한 사업이다. 상업극이 늘어난 대학로의 관객 연령층이 점차 낮아지면서 정통극을 해온 중견 연극인들은 갈 곳이 줄어들었다.



 1970년 기독교방송 성우로 데뷔한 김동수 배우 역시 비슷한 처지다. 연극뿐 아니라 100편 넘는 드라마·영화에도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 89년 초연한 연극 ‘오구’의 맏상주 역으로 그해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받았던 연기파 배우지만, 공연 기회는 점점 줄었다. 게다가 2000년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그가 운영했던 소극장 ‘김동수플레이하우스’도 올 1월 문을 닫았다. 2∼3년 전부터 월 400만원 임대료를 감당 못할 만큼 극장 운영이 어려워져서였다. 올 들어 잇따라 폐관한 소극장 ‘상상아트홀’ ‘대학로극장’ 등과 같은 이유다. 그는 “대학로에 신식극장, 대형극장이 늘어나면서 시설이 열악한 소극장엔 관객의 발길이 점점 뜸해졌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극장 폐관 후 백수로 빈둥거리고 있는데 ‘옆집에 …’ 제안을 받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조금 더 자유롭고 부담 없는 여건 속에서 공연을 계속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객들도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 들으러 옆집에 놀러온 것처럼 편하게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각 배우들의 ‘옆집에 …’ 공연 예약은 한국연극인복지재단 홈페이지(www.plays.or.kr)를 통하면 된다. 02-741-0335.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연극인의 복지향상을 위한 비영리 재단. 2005년 배우 박정자·윤석화와 이병복 무대미술가가 각각 1000만원씩 출연, 자본금 3000만원으로 시작했다. 연극인과 극단, 연극학과 교수 등의 기부금을 모아 현재 자본금은 10억원대로 늘었다. 연극인 의료비와 종합건강검진 지원, 공연예술인 자녀 시간제 보육을 위한 ‘반디돌봄센터’ 등의 사업을 한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연극인 100명이 한국 근현대 소설 100편을 낭독하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도 진행한다. 오디오북으로 출시해 낭독자 인세 10%를 전액 재단 사업에 쓸 계획이다. 송승환·강부자·안재욱·양희경·정보석·이희준·정동환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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