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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조롱만 받기엔 아깝다, 김기태의 실험

중앙일보 2015.05.19 00:30 종합 29면 지면보기
‘나는 오늘 팀과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왜?’


“미·일과 다른 한국적 수비 만들자” … 선수들에게 창의적 플레이 강조
폭투 대비 포수 뒤에 3루수 배치
규칙 혼동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 “부족해도 새로운 시도 하고 싶어”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의 킨 야구장에 붙어 있던 KIA의 슬로건이다. 다른 구단들은 ‘우승을 향해 뛰자’ 등 선수들을 독려하는 문구를 내걸었지만 KIA는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물었다. 지난 겨울 KIA 지휘봉을 잡은 김기태(46) 감독이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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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의 훈련 일정도 독특했다. 단체훈련은 오전에 끝났고, 오후엔 추가 훈련을 하든 호텔에서 쉬든 선수 자율에 맡겼다. 김 감독은 연습경기마다 ‘창의상’ 수상자를 정했다. 3안타를 때린 타자나 무실점한 투수에게 주는 일반적인 수훈상이 아니었다. 투수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한 끈질긴 타자, 백업 플레이를 열심히 한 수비수에게 상을 줬다.



 캠프 후반엔 코치들 없이 선수들끼리 수비 훈련을 하기도 했다. 감독이 여백을 만들어주고 선수들이 채우는 방식이다. 그는 “미국·일본의 포메이션 말고 우리 만의 방식을 만들어 보자”고 독려했다.



 지난주 해외 토픽이 됐던 ‘김기태 시프트’는 이런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지난 13일 kt전에서 김 감독은 5-5로 맞선 9회 초 2사 2·3루에서 희한한 수비 시프트를 지시했다. KIA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 백네트 쪽으로 이동시킨 뒤 KIA 투수 심동섭에게 고의볼넷을 지시한 것이다. 심동섭이 폭투를 할 경우를 대비해 이범호가 뒤를 받친 것이다.



 심판진은 ‘볼 인 플레이 상황에서 야수는 페어지역에 위치해야 한다’는 야구규칙을 근거로 이범호를 돌려보냈다. 다음날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가 이 장면을 소개할 만큼 큰 화제가 됐다. 김 감독은 “룰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며 “그러나 우발적인 건 아니다. 캠프 때 구상해 본 수비다. 중계플레이가 이뤄질 때처럼 포수 뒤에서 누군가 백업하는 전략을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타나는 김 감독의 특징은 두 가지다. ‘김기태 시프트’가 실패하자 “몰랐다. 죄송하다”며 재빨리 사과한 것과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부족한 게 많지만 내 방식대로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창의적 플레이가 기계적 노력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김 감독은 믿고 있다. ‘창의 야구’ 덕분인지 KIA는 올 시즌 10개 구단 중 최소 실책(18일 현재 17개)을 기록 중이다.



 김 감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대장기질이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은 반면 자기 주관이 워낙 확고해 돌출 행동도 한다. KIA 선수들은 김 감독을 지지한다. 최하위권으로 평가된 KIA가 5할 승률(19승19패·공동 7위)을 기록하는 이유도 김 감독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이범호는 “고의볼넷이라면 볼데드 상황으로도 봐서 야수가 이동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시도해보고 안 된다고 하면 되돌리면 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장이 감독을 엄호한 방식도 창의적이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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