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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은 왜 백수오에 베팅했나] 낮은 수익률 만회하려다 ‘삽질’

온라인 중앙일보 2015.05.18 09:40
[이코노미스트] 장밋빛 전망 내놓은 증권사도 투자 부채질 … 코스닥 투자는 대체로 성공적









국민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연기금도 가짜 백수오 사태에 된통 당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 24일까지 연기금이 순매수한 내츄럴엔도텍 주식은 모두 268억5700만원어치다. 4월 16일 9만1200원이던 내츄럴엔도텍의 주가는 22일부터 27일까지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치는 등 급락을 거듭했다. 5월 8일 현재 내츄럴엔도텍 주가는 1만원대로 떨어졌다.



내츄럴엔도텍에 투자한 연기금은 상당한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4월 28일 내츄럴엔도텍이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잠시 하한가 행진에서 벗어나자, 연기금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보유물량을 대부분 털어냈다. 주당 4만7150원에 51만8215주(약 242억원)를 한꺼번에 팔았다. 고점 대비 반 토막 난 상황에서 손절매를 한 셈이다. 연초 매수분의 손해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최근 매수분일수록 피해가 커진다.





내츄럴엔도텍 주식 대부분 손절매



이렇게 피해가 커진 이유는 연기금이 기관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내츄럴엔도텍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기관이 352억2500만원어치의 내츄럴엔도텍 주식을 매입하는 동안 연기금이 매입한 내츄럴엔도텍 주식은 269억원어치에 육박한다. 기관 중 연기금 순매수 비중이 75%나 된다. 이에 비해 사모펀드는 80억2900만원, 금융투자는 42억700만원, 투신은 19억7000만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432억5800만원어치를 순매수했고, 개인은 761만9800만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가짜 백수오 사태로 연기금이 눈덩이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자 연기금의 투자행태에 시선이 쏠린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단시일에 주가가 5분의 1로 급전직하한 종목에 투자한 것에 대해 기금 안정성을 염려하는 시각이다. 4대 연기금 중 국민연금 비중은 86%가 넘는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4월 24일 기준 연기금의 연초 이후 순매수 대금은 코스피가 3조855억원, 코스닥이 1926억원이다. 특히 가짜 백수오 사태가 터지기 전인 4월 21일 코스닥 시장에서 연기금은 2322억원을 순매수했다. 가장 많이 투자한 종목은 엔터테인먼트 업종이다. 실제로 연기금이 투자한 종목을 개별 기업별로 분류하면 1위가 1058억원을 투자한 CJ E&M이다. 309억원을 투자한 에스엠과 221억원을 투자한 와이지엔터테인먼트도 투자 종목 ‘톱 10’에 포함돼 있다.



코스닥 시장에 대부분 상장돼 있는 바이오 종목 주식도 많이 매입했다. 유전자 진단 기술 및 시약 개발업체 씨젠(267억원)과 줄기세포 치료제와 건강기능식품 업체 메디포스트(207억원),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체 메디톡스(150억원)에 큰 돈이 들어가 있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내츄럴엔도텍까지 하면 당시 기준 9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바이오 업체에 몰려있는 셈이다. 이는 연기금의 전체 코스닥 시장 투자 금액의 38.5%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연기금은 왜 이런 종목에 투자한 걸까. 과거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 대형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하지만 올해 중·소형주와 성장주 주가가 상승하자 코스닥 시장에 눈을 돌렸다. 현재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은 코스피의 6% 수준이다.



연기금 수익률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는 점도 코스닥에 눈길을 돌린 배경으로 분석된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의 2013년 말 기준 기금운용수익률은 4.16%다. 이에 비해 캐나다국민연금(CPP)과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의 수익률은 각각 16.5%, 14.5%로 국민연금에 비해 훨씬 높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국민연금의 3년 평균 운용수익률도 4.5%에 불과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퇴직 공무원 공제회인 칼퍼스(CalPERS)의 10%,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GPIF)의 8.2%에 비해 낮은 편이다.





기금 소진설도 코스닥 투자 부채질



증권사들의 장밋빛 투자 전망도 연기금이 내츄럴엔도텍에 과감히 베팅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 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가짜 백수오 파동 전까지 증권사들이 발표한 내츄럴엔도텍 보고서는 44건에 달한다. 대부분 매수를 권하거나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한 내용이다. 키움증권은 가짜 백수오 파동 보름 전인 4월 6일 ‘국내 유통채널 다각화 등을 통해 성장성이 두드러진다’며 목표주가를 6만6000원에서 9만9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나대투증권도 ‘백수오 시장 성장성과 해외 진출을 고려할 때, 성장성 확보가 분명하다’며 ‘주가는 우상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증권사들이 내놓은 보고서 제목을 보면 ‘세계를 향한 위대한 한 걸음(유진투자증권)’ ‘꿈의 현실화 국면(이베스트투자증권)’ ‘미개척 영토가 많다(교보증권)’ 등 장밋빛 일색이었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의 취약한 기업분석 능력도 문제지만,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연기금 역시 투자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솔직히 백수오가 진짜라고 해도 내츄럴엔도텍이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었다는 말은 이미 돌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금 소진설도 코스닥과 같이 더욱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를 부채질했다. 감사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운용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수익률이 이어질 경우 2045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이 완전 고갈될 전망이다. 기존 보건복지부가 예상한 2060년보다 15년 앞당겨진 것이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심화하면 기금 고갈 시점이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짜 백수오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실제로 연기금이 코스닥 종목에 가장 많이 투자한 10개 종목을 보면, 에스엠을 제외한 9개 종목의 연초후 수익률이 플러스다. 특히 골판지와 마스크팩 화장품 제조업체 산성앨엔에스의 경우 연초후 수익률이 277%에 달한다. 내츄럴엔도텍 역시 가짜 백수오 사태 전까지 수익률은 높은 편이었다.



일각에서는 그간 코스닥 투자에 적극적이던 연기금이 내츄럴엔도텍 파동 이후 소극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개별 종목 투자 수익률이 낮다고 연기금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한 곳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분산투자를 통해 전체 수익률이 높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희철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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