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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군인당 냄새 별로 안 풍겨”

중앙일보 2015.05.18 02:10 종합 7면 지면보기
1963년 1월 18일 공화당 발기인 선언대회에서 선언문을 읽는 JP.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민주공화당 발기 선언대회가 열린 18일 오전 소공동 조선호텔은 잔칫집처럼 붐볐다. 아침 9시부터 78명의 당 발기인들과 수많은 내외 신문기자들은 대회장인 그랜드홀을 비롯해 칵테일하우스, 커피숍 로비 등 구석구석에까지 하나둘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당시 신문, 신당 발기인 대회 보도
출범 이튿날 ‘JP 사퇴’ 논란 불거져

 63년 1월 18일자 경향신문(석간)은 민주공화당 출범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야권은 단일야당 협상이 정파 간 의견 대립으로 깨진 직후였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먼저 깃발을 올리고 순탄하게 출발하는 듯이 보였다.



 발기인총회에 참석한 78명 발기인은 만장일치로 김종필 임시의장을 선임했다. JP는 의장에 추대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신당 발기는 찬란한 자유민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 꽃을 피우기 위한 화분 속의 거름이 될 각오 아래 걸음을 멈추지 않겠다.”



  이날 발표한 ‘민주공화당’이란 당명은 하루 전 발기인회에서 투표 끝에 정해졌다. 동훈 전 국토통일원 차관이 보관한 발기인 회의록에 따르면 민주공화당이 49표, 공화당이 12표, 정화당·민화당·새공화당이 각각 2표를 받았다. 발기인들은 각계각층을 포괄하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친 자유당계 인사가 많았고, 야당이 꼬집는 ‘군인당’ 같은 냄새가 별로 풍기지 않았다는 것이 특색”(동아일보 1963년 1월 18일)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출범하자마자 내부 분열로 휘청거렸다. 19일 군 출신 발기인들이 모여 당 조직 전면 개편과 JP의 사퇴를 건의키로 뜻을 모았다. 이어 21일엔 5·16거사 주체인 김동하 전 제1해병사단장이 국가재건 최고위원직과 공화당 발기위원직에서 물러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김동하는 “ 김종필을 선거가 끝날 때까지 해외에 보낼 것, 당 조직을 민주제도로 개편할 것” 등을 요구했다. 원내(院內)와 사무처로 나뉜 이원조직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리=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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