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정호의 아하, 아메리카] 친이스라엘 기업에 투자 말라 …‘폭격’이 미국 대학생 바꿨다

중앙일보 2015.05.18 01:54 종합 16면 지면보기
2014년 8월 UC버클리·링컨·세이부룩대가 모여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대학가에서 친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BDS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 알렉스 크리스]


2014년 7월 8일 이스라엘군 미사일이 가자지구 라파를 타격해 화염이 치솟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자리 잡은 180년 전통의 오글레토프대. 이 대학 학생회 임원들은 오랜 토론 끝에 이날 민감한 안건을 두고 투표했다. 친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학교 재단에 요청할지를 결정하는 투표였다.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 곧바로 학생회는 재단 측에 “캐터필라·록히드마틴 등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지원하는 11개 회사로부터 투자금을 회수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로써 이 학교 역시 친이스라엘 기업을 겨냥해 벌어지고 있는 ‘BDS 운동’ 동참 대학이 됐다. BDS란 ‘불매·투자철회·제재 (Boycott·Divestment·Sanction)’의 첫 글자를 딴 약어다.

팔레스타인 1000여 명 희생 뒤 대학가 반이스라엘 기류 번져
‘불매·투자철회·제재’ BDS 투표 … 학교 재단 측에 투자 철회 압박
유대계 학생들까지 일부 가담



 유대인들이 막후에서 조종하는 것으로 통하는 미국. 이들이 재계는 물론 학계·언론계, 심지어 영화산업까지 장악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터라 그런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신(新) 반유대주의 운동’이 빠르게 번져나가 미국 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중 대표적인 게 BDS 운동이다. BDS 운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간접적으로라도 돕는 기업에 대해 상품 불매 운동과 투자 철회, 그리고 각종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캠페인이다. 미 대학의 경우 거의 모든 재단이 기업 투자에 나서 여기에서 나온 수익금을 학교 운영 및 장학금 등에 사용한다. 투자 규모도 상당해 하버드·예일·컬럼비아 등 명문대 재단들은 금융가의 큰 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학교들이 투자 회수에 나서면 그 파장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에 대한 BDS 캠페인은 지난해 7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으로 10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미국 대학가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프린스턴·미시건·코넬 등 수백 개 대학에 BDS 추진 단체가 있었지만 2013년까지 이를 관철하기 위해 학생회에서 투표한 대학은 5곳에 불과했다. 모두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은 캘리포니아 지역 대학들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투자 철회 요청 여부를 놓고 찬반 투표를 한 대학은 19곳으로 늘었다. 이중 미시건·웨슬리언 등 9개 학교가 투자철회 건을 통과시켰다. 올 들어 반이스라엘 바람은 더욱 심해져 5월 중순 현재 19개 대학 찬반 투표가 실시돼 이중 8개에서 BDS 지지파가 승리했다.



 학생회에서 투표가 이뤄질 때면 예외 없이 친이스라엘계와 아랍계 학생들 간에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유대계 학생들이라고 무조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의 강경정책에 반대하는 유대계 학생들 역시 BDS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



 어쨌든 갈수록 이기기 위한 BDS 지지파들의 노력이 치열해져 로욜라대의 경우 두 번의 무산 끝에 지난 3월 말 16대 15로 투자철회 요청안이 통과됐다. 막판까지 찬반 동수였으나 의장이 찬성해 한 표 차로 신승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학생회가 재단 측에 투자 철회를 요청 중인 대학 중에는 스탠퍼드·미시건·UC버클리·노스웨스턴 등 명문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학생회에서 요구한다고 투자 철회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재단에서 학생회의 주문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한 대학은 단 한 학교도 없다.



 정치권의 견제도 간단치 않다. 지난달 테네시주를 시작으로 인디애나주 의회에서는 BDS 운동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럼에도 미국 내 반이스라엘 정서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에 유대인 사회는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이스트캐롤라이나대에서는 유대인 학생 방문에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가 칠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해 10월 UC산타바바라대 캠퍼스에서는 “9·11 테러는 이스라엘의 음모”라는 내용의 유인물이 뿌려지기도 했다.



남정호 기자 namjh@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