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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탄 고바우 영감 … 백자 속에 들어간 호랑이

중앙일보 2015.05.18 01:33 종합 25면 지면보기

조선 민화(民畵)는 이름 그대로 민속적 회화다.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여염집 그림이다. 사대부들이 즐기던 산수화나 화조화를 모방하기는 했으나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과 꿈을 담은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화풍, 선명하고 발랄한 색감으로 속화(俗畵) 또는 행복화(幸福畵)라 불리기도 한다. 전통 회화를 계승하는 다양한 흐름 중에 최근 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전시회가 늘고 있다.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원로 작가 김성환, 조각에서 민화로 영역을 넓혀온 김소선씨의 전시회를 프리뷰했다.



김성환 “고바우 십장생 보며 희망 가졌으면”

민화 재해석 전시회 2제
‘고바우’27일부터 인사동길
‘백자 민화’내일부터 평창동



김성환 작 ‘장생도 4’, 화선지에 채색, 27×27㎝. 거북 등에 탄 고바우 영감. [사진 김성환]


김성환
네 칸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의 창조자 김성환(83) 화백은 만화가 이전에 화가였다. 한국 최장수 연재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 덕에 시사만화계의 원로로 불리지만 그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한국전쟁 시절 기록화나 서민 삶을 소재 삼은 그의 구상화는 고바우 캐릭터가 지닌 사실성과 시대정신을 잇고 있다.



 27일부터 서울 인사동길 가나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고바우 십장생도전(十長生圖展)’은 전통 민화 중 장생도 얼개에 고바우 영감을 조화시킨 신 풍속도전이다. 해·구름·산·물·바위·학·사슴·거북·소나무·불로초 등 장수 상징물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 고바우가 천연덕스럽게 들어앉았다. 고바우는 마음을 비운 사람처럼 느긋하다. 이엉을 덮은 허름한 정자에 팔베개하고 눕거나 느림보 거북을 타고 자연 속을 노닌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심심한 고바우표 표정은 여일하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인간 희망을 그림으로 표현한 십장생도에서조차 고바우는 무념무상이다.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장년의 소시민 남성을 대표했던 고바우는 격렬했던 20세기 후반 한국사회를 지나 장수사회의 새 이정표를 바라보고 있다.



 김 화백은 “누구나 바라는 장수와 누구나 보고 싶은 사물을 그렸다”며 “이 그림을 계속 바라보며 희망과 의욕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예술이니 작품이니 하는 심각한 요소는 생각하지 않고 그린 그림이라는 냉정한 자평은 그의 만화정신과 통한다. 무표정한 얼굴에 머리카락이 달랑 한 올뿐인 고바우는 군사정권 아래서 국민이 괴롭고 힘들 때 신랄한 붓대로 웃음을 준 그의 분신이다. 이제 그의 장생도 속 고바우는 한국현대사의 준엄한 사관(史官)에서 인생을 음미하는 자연철학자로 거듭나고 있다.



 ‘고바우 영감’ 원화(原畵)가 2013년 만화 최초로 등록문화재가 된 기념전이다. 다음 달 2일까지. 02-736-102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김소선 “백자와 민화, 세계에 통할 문화 유산”



김소선 작 ‘푸른 호랑이’, 백자에 채색, 24×24㎝. 민화를 그린 장식용 접시. [사진 가나아트센터]


김소선
“백자에 그토록 당당한 민화 ‘호공(호랑이)’이 등장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불쾌한 일을 겪은 날 집에 와 김소선의 ‘호공’을 보면 모두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져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일본에서 조선시대 도공의 맥을 잇고 있는 15대 심수관(89)은 김소선(71)씨가 백자 위에 그린 민화를 보고 이렇게 썼다. 그는 또 “아름다운 미소 뒤에 현대 사회의 권력이나 황금만능주의에 대해 예리한 아이러니의 날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평했다.



 도자기의 명인 심수관의 호평을 받은 도예가 김소선 초대전 ‘백자에 그린 그림’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9일부터 열린다. 섭씨 800도의 초벌구이 위에 조선 민화의 주요 소재인 호랑이·꽃·새 등을 그리고 유약을 바른 후 섭씨 1300도 가까이에서 소성한 백자 민화다. 전통 민화의 고운 색을 도자 위에 살리면서 그 해학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까치와 놀고 있는 우람한 호랑이의 왕방울 눈은 현대 회화의 표현을 뛰어넘는 원시성을 드러낸다. 흰 호랑이 네 마리가 뛰노는 소나무 숲의 정경은 힘과 균형이 어우러진 과감한 디자인으로 시대를 초월한다. 400×100㎝ 대형 도자기판에 그린 ‘소나무와 호랑이’, 호랑이 문양의 시도가 새로운 ‘붉은 호랑이’를 비롯한 60여 점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다.



 백자와 민화의 결합은 전통 미술의 현대화 작업 중에서 강점이 많다. 형식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져 세계미술계에 내보낼 때 좋다. 김씨는 “우리 민화는 꿈과 이야기가 있는 그림으로 상징성·장식성이 강하다”며 “그 민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려다 보니, 종이보다는 백자에 그리게 됐다. 백자와 민화, 두 가지 우리 문화유산의 결합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에 쏙 들어오는 종지나 접시부터 4m 벽화까지 백자가 캔버스가 됐다. 다음 달 21일까지. 02-3217-0232.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김성환=1932년 개성에서 태어나 경복고를 졸업하고 49년 17세 나이로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를 연재하며 신문만화가로 데뷔했다. 50년 그의 분신 격인 ‘고바우 영감’을 만화신보에 선보인 이래 반세기 가까이 동아일보·조선일보·문화일보를 거치며 총 1만4139회를 연재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김소선=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경원대 사회교육원 위촉교수를 지냈다. 우리 것 찾기가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조선 백자가 지닌 미감에 눈떠 그 백색 화면에 어울림직한 민화를 그릴 아이디어를 얻었다. 2000년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멕시코·에콰도르·영국·노르웨이 등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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