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공짜인 듯 공짜 아닌 공짜 같은’ 무상보육

중앙일보 2015.05.18 00:25 종합 33면 지면보기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누리과정(만 3~5세) 예산 부담을 둘러싸고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고 투입과 지방채 발행으로 해결하기로 했지만 야당과 일부 지방교육청은 반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재원 부담을 교육청에 전가해 시·도교육청 곳간이 바닥날 위기”라며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해마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2년 시작된 영아(만 0~2세) 무상보육 대란과 2013년의 기초연금 대란 모두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비용 분담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올해 급한 불을 끄더라도 언제 불이 다시 번질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조달하게 되어 있다. 지방교육청은 보육은 국가 책임이라는 대선공약을 내세워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저항했다. 2015년 누리과정 예산은 3조9000억원인데 지방교육청은 2조2000억원만 편성했다. 미편성분 1조7000억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목적예비비로 5064억원을 투입하고, 정부보증 지방채 8000억원을 발행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4000억원은 지방교육채권을 발행해 해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에 정부와 국회가 합의한 것이다.



 지방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지방재정법 개정이 지지부진하다가 지난 4월 28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가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누리과정 보육대란은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채 발행은 2017년 현 정부 임기 말까지 한시적인 조치로 묶어 놓았다. 2017년 말 대선의 이슈로 남겨둔 셈이다. 다음 정부로 미룬다 해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시적인 조치는 늘 연장되게 마련이어서 앞으로 계속 지방채에 의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정부든 빚을 지는 데에는 적극적이나 빚을 갚는 데에는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도 이래서 빚이 늘어난 것이다.



 무상보육은 영아(만 0~2세) 무상보육과 유아(만 3~5세) 무상보육으로 나뉜다. 영아무상보육의 재원은 중앙정부 국고보조금과 지자체 일반회계예산으로 조달된다. 중앙과 지방 간의 분담률을 놓고 힘겨루기 하다가 2014년에 중앙정부가 더 많이 분담하는 쪽으로 해결을 봤다.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간 분담률도 문제가 돼 복지수요는 많은데 재정자립도가 낮은 기초지자체의 분담을 줄여주었다. 유아 누리과정(만 3~5세)의 재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방교육청의 무상급식, 경기침체로 인한 교육재정교부금 수입이 예상보다 저조해지자 국고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보육은 국가 책임이라는 대선공약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 책임을 뒤집어보면 국민의 책임이다. 국세고 지방세고 모두 국민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지방세를 국세로 전환하면 국가가 모두 책임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게 옳을까. 결국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은 선택이다.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5개년계획(2006~2010)에서 저출산의 해법으로 시작된 보육은 저소득계층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하다가 2012년에 영아 무상보육을 시행했고, 2013년에는 유아도 무상보육을 했다. 유아에 대한 보육과 교육을 통합한 공통과정을 ‘누리과정’으로 이름 붙였다. 이게 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여야가 합작으로 이루어낸 쾌거(?)였다. 정부는 사실 더럭 겁이 났다. 무상보육이 낳을 부작용을 알았기 때문에 부모의 양육 책임을 내세워 진짜 필요한 계층부터 우선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 숙제를 어떻게 푸나 한숨을 쉬면서 말이다.



 무상보육이라 하지만 ‘공짜인 듯 공짜 아닌 공짜 같은’ 보육이다.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세금이다. 그러나 남이 내는 세금이니까 공짜같이 여겨진다. 착시현상이다. 착시현상을 깨우쳐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돈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음을 분명히 알려 줘야 한다. 누군가 땀 흘려 번 돈이다. 학부모는 바우처를 받으니 자기 돈이 아닌 것 같고, 어린이집은 매달 원생 1인당 최대 78만8000원에서 최소 26만원이 꼬박꼬박 들어오니 이것처럼 안정된 사업이 없다. 무상보육이 공짜처럼 인식되면 해이해질 수밖에 없다. 무상보육으로 학부모의 부담이 줄어드니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투자한다. 아이 잘 키우기 경쟁에 끝이 안 보인다. 이젠 학원비까지 무상교육 속으로 끌어들일까 겁이 날 판이다.



 아이 양육에 국가와 지자체, 부모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보육비용도 함께 분담해야 한다. 진영논리에 부모와 어린이집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결국 표를 얻기 위한 것 아닌가. 보육비용은 중앙정부, 지자체, 학부모가 각각 3분의 1씩 분담하는 게 어떨까. 다만 지자체의 보육수요와 재정력에 따라 분담률은 조정해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구의 경제력에 따라 비용 부담도 조절해줄 필요가 있다. 보육교사와 CCTV에 아이 양육을 맡기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보육은 국가와 마을과 부모가 함께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해야 비로소 미래를 위한 효과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