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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설사·혈변 지속땐 염증성 장질환 의심을

중앙일보 2015.05.18 00:03 건강한 당신 4면 지면보기
한동수 대한장연구학회 회장
오래 전 크론병 진단을 받고 외래 진료를 받던 환자가 최근 진료실을 찾았다. 본인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 찾아왔노라고 했다. 환자는 대학 신입생이던 해 40㎏이 채 되지 않는 야윈 몸으로 복통과 심한 체중감소를 호소하면서 병원을 찾았다. 이미 기능성 장질환, 거식증 등의 질환이 의심된다며 여러 병원을 전전한 후였다. 크론병을 진단받고 집중 치료한 결과 지금은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에도 이르렀다.



크론병, 궤양성대장염을 포함하는 염증성 장질환은 세계적으로 약 500만 명의 사람이 앓고 있다. 만성적으로 장에 염증과 궤양이 발생하는 소화기질환이다. 장에 염증이 생기면서 잦은 설사·복통이 생기는데, 특히 음식을 먹으면 복통이 악화돼 체중이 감소한다. 설사가 심해지면서 혈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빈혈·쇼크·성장장애가 생긴다. 반복된 염증으로 장이 좁아지거나 쉽게 터지고, 심지어 젊은 나이에 대장암이 발병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염증성 장질환이 주로 서양인에게 흔하고, 동양인에게는 드문 질환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도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염증성 장질환을 연구하는 대한장연구학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염증성 장질환 환자 중 41%가 증상을 경험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는다. 특히 26%는 발병한 지 1년 지난 뒤에야 진단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증성 장질환이 생소한 질환인 탓에 병원을 찾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내원할 당시 이미 장관이 손상된 후인 경우가 많다. 만약 젊은 연령층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장기간 설사를 하거나 코 같은 점액변이 섞인 혈변이 있고, 복통과 함께 체중이 감소한다면 염증성 장질환을 한번쯤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일단 증상이 발생하면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진단 후 낙담하지 말고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주로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 등을 치료제로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면역작용을 차단하는 생물학제제를 사용해 손상된 장 점막을 회복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염증성 장질환의 확실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장내 세균과 신체 면역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항간에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으나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면서 증상이 없어진 상태를 유지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염증성 장질환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겪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하자.



한동수 대한장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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