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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만난 라울 카스트로 “다시 가톨릭 신자가 될 수도”

중앙일보 2015.05.12 01:25 종합 12면 지면보기
10일(현지시간) 바티칸 관저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과 만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공산 쿠바의 지도자인 카스트로는 “교황이 9월 쿠바에 오면 그가 집전하는 모든 미사에 참석하겠다”며 “다시 가톨릭 신자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미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 협상을 중재했다. [바티칸 AP=뉴시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철저해야 한다.” 1985년 쿠바 공산혁명의 주역인 피델 카스트로의 단언이다. 공산당원은 무신론자여야 한다는 얘기다.

“프란치스코도 나도 예수회 출신
교황 9월 쿠바 오면 미사 다 참석”
라울, 성화 선물 … 종교자유 강조
미국과 관계복원 중재역할 감사도



 “다시 가톨릭 신자가 될 수도 있다.” 10일(현지시간) 그 카스트로의 동생이자 혁명 동지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한 말이다. 30년 만의 격세지감이다. 이 변화를 이끌어낸 인물 중 한 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바티칸을 방문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쿠바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카스트로 의장을 보자마자 “비엔베니도”(환영한다는 뜻의 스페인어)라고 외쳤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두 사람은 50분간 대화했다. “아주 친밀한 분위기였다”(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고 한다. 카스트로 의장은 바티칸을 떠나며 기자들에게 “아주 행복하다. 미국과 쿠바 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교황이 한 일에 감사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교황이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협상 때 중재역을 한 데 대한 언급이었다.



 카스트로 의장이 어느 정도 고마운 마음이었는지는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의 회담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혜와 인간미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곤 “교황은 예수회 출신이고 나 역시 쭉 예수회 학교를 다녀 어떤 면에서는 예수회 사람”이라며 “교황이 9월 쿠바를 방문하면 그가 집전하는 모든 미사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이어 “교황의 모든 연설과 논평을 읽었다. 교황이 계속 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나도 다시 기도하고 교회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심”이란 말도 덧붙였다. 또 “나는 쿠바 공산당 출신이고, 공산당은 신앙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허용하고 있고 그것은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했다.



 영국 BBC방송은 “공산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 종교에 귀의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최근 얼마나 둘의 관계가 개선됐는지를 보여준 장면”이라며 “쿠바 매체는 이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는데 (카스트로 의장의 발언이) 가벼운 말이었든 아니든 쿠바 국민이 알았다면 정말 놀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쿠바는 공산혁명 이후 가톨릭을 탄압했다. 성직자의 80%가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둘의 관계에 변화가 온 건 요한 바오로 2세 때다. 96년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칸을 방문했고 98년엔 요한 바오로 2세가 답방했다. 상징적 조치가 쿠바에서의 크리스마스 복원이었다.



 아르헨티나 성직자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무렵 『요한 바오로 2세와 피델 카스트로의 대화』란 소책자를 냈다. 공산주의를 성토하면서도 미국의 쿠바 제재 또한 비판했다. 책에서 강조한 건 대화였다. 최근 교황으로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카스트로 의장에게 외투로 가난한 사람을 덮어주는 생 마르탱 성인의 모습이 담긴 대형 메달과 자신의 권고인 ‘복음의 기쁨’을 줬다.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고 도와줘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권위도 높여줘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카스트로는 아바나 성당의 200주년 기념 메달과 난파선들로 구성된 커다란 십자가를 묘사한 쿠바 의 현대 예술작품을 선물했다. 종교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는 암시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미국을 방문하는 길에 쿠바를 찾는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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