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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지적재산 보호 없인 창조경제도 없다

중앙일보 2015.05.12 00:55 경제 8면 지면보기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창조경제 또는 혁신경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할 수 있지만, ‘지식재산 또는 무형재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경제체제’라는 답만큼 현실적인 답은 없는 것 같다. 거꾸로 말하면 지식재산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창조경제도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할 때 느끼는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특히 혁신역량이 뛰어난 선진국의 기업일수록 지식재산 침해에 대해 한국의 기업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나의 지식재산을 보호받는 것도 물론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남의 지식재산을 침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의 지식재산을 침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을까. 윤리의식이 우리보다 높아서가 아니라, 지식재산을 침해했음이 드러났을 때 법원에서 부과하는 페널티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고의침해가 인정되는 경우는 몇 배의 가중처벌도 받는다.



 우리나라의 2014년 국내 특허 출원 건수는 총 21만여 건으로 세계 4위이며 상표 출원 세계 7위, 디자인 출원 세계 3위로 지식재산 여러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다. 2013년 한국인의 특허협력조약(PCT) 국제 출원 건수는 1만2386건으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출원이 많은 선진 5개국을 의미하는 ‘IP5’에 포함된 특허 강국이다.



 그러나, 이런 외형 지표상의 괄목할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지식재산권 보호순위는 세계경제포럼(WEF) 발표기준 68위(144개국 대상),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기준 41위(60개국 대상)에 머무르고 있어, 지식재산 침해에 대한 보호집행력 수준이 우리의 경제규모나 국가경쟁력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창조적인 개발 의욕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기술 벤처기업의 성장을 크게 방해하는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는 지식재산권범죄의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있고, 특허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제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타인의 지식재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 침해로 판결을 받아도 약간의 페널티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례로부터 알기 때문에 굳이 처음부터 남의 지식재산 침해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허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이야기이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 특허권 침해소송을 살펴보면, 1심에서 손해배상 인용액이 5천만원 이하로 선고된 경우가 전체 사건에서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그 인용액이 청구액의 10%에 머물러 특허소송에서 승리해도 배상액이 손실보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2007∼2012년 사이에 손해배상 인용액의 중앙값이 490만 달러(약 53억원)였으나 우리나라는 2009∼2013년 사이에 손해배상 인용액의 중앙값이 5900만원에 불과하다. 100배 차이이다. 경제규모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특허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일각에서는 특허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모방을 했었어야 했던 과거 추격형 경제에서는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낮은 양형기준, 인용율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도형 혁신경제에서는 아니다. 창조경제는 아이디어에서부터 기술개발, 사업화, 시장진출에 이르는 일련의 기업 활동이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지식재산의 가치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남의 것을 베끼거나 적당히 피해 가면 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리고 법원의 지식재산 보호에 대한 인색한 판결이 계속되는 한, 기술을 경쟁력으로 하는 기업들의 성장은 불가능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희망하는 창조경제는 점점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지식재산권 범죄의 양형기준을 엄중히 하고 손해배상액을 시장가치에 맞게 현실화하는 것은 지식재산 존중문화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것이며, 대외적으로도 국내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홍보되어 우리나라의 국제 신인도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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