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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① 앤틱가구거리] 영화 ‘노팅힐’ 주인공 된 듯 … 앤틱이 숨쉬는 서울 속 유럽

중앙일보 2015.05.12 00:51 종합 20면 지면보기



70년대 미국 장교, 대사관 근무자, 귀국하며 내놓은 물건 모아 형성
빈티지 가구·소품점 85곳 성업 … 15일부터 최대 80% 할인 축제
용산구 “세계적 앤틱 관광지 꿈”

















서울 이태원엔 외국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 그대 모습 남겨진 그 거리’(주현미, 이태원연가)부터 ‘젊음이 가득한 세상’(UV, 이태원프리덤)까지 세상살이의 다채로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한양도성에 이은 ‘서울, 가볼 만한 곳’ 두번째 이야기는 이태원입니다. 앤틱가구거리를 시작으로 경리단길·해방촌, 한남동 골목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지금까지 이태원 나들이의 동선은 단순했다. 해밀턴 호텔 뒷골목으로 들어가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거나 왼쪽으로 길을 틀어 경리단길·해방촌으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 이태원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은 호텔을 등지고 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미국적 색채가 강했던 이태원에서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호텔 맞은편 야트막한 비탈길로 100m쯤 내려가자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시선을 붙드는 건 길 양옆으로 늘어선 유럽풍의 고(古)가구들. 사람들은 상점들이 도로 위 간이테이블에 내놓은 물건을 구경하거나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든다.



 청화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브라운앤틱’에서 발길을 멈췄다. 364㎡(110평) 규모의 매장에 들어찬 골동품들로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임창희(48) 사장은 영국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장식미술 교육과정을 수료한 유학파로 7년 전 가게를 냈다.





 가게 한 켠엔 기품이 넘치는 장식장 하나가 고고히 서 있다. 반질거리는 원목 테두리 곳곳에 보이는 파티나(Patina·오래된 목제품 표면에 생기는 흠집)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임 사장은 “영국 에드워드 7세 시대 에 흔히 보이던 미술양식이 구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제국이 덕수궁 석조전에 들여왔던 가구와 같은 제품이고 가격대는 15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앤틱가구이야기』를 펴낸 최지혜(43·여) 전 문화재청 자문위원은 “프랑스의 전통장식은 가늘고 장식도 많은 반면 영국은 굵고 중후한 멋을 풍긴다”며 “나라마다 독특한 양식을 살펴보는 것도 앤틱가구거리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 거리에 비싼 가구들만 있는 건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시계·찻잔 등 장식품들도 있고 빈티지 라 불리는 가구들도 있다. 이곳 상인들은 1945년 이전에 제작된 가구를 앤틱, 이후에 제작된 가구를 빈티지로 부른다. 가구거리는 1970년대 후반 미군 장교나 대사관 근무자 가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들이 쓰던 가구들을 처분하면서 형성됐다. 41년째 ‘골든가구’를 운영하고 있는 정대한(70) 사장은 "최근 몇년새 영국·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이들이 이곳에 가게들을 내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최근 앤틱가구거리가 “서울 속의 유럽”이란 입소문을 타면서 카페와 음식점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방송인 홍석천씨는 얼마 전 이곳에 국수가게를 냈다. 앤틱가구점에서 물건을 고르던 홍씨는 기자에게 “식당에 쓸 앤틱 샹들리에를 구하러 왔다”고 했다.



 손때 묻은 세월을 방안에 들여놓고 싶은 이들에겐 이번 주말이 좋은 기회다. 15~17일 열리는 ‘앤틱 페스티벌’에선 최대 80%까지 할인된 제품들을 판매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앤틱가구거리를 영화 ‘노팅힐’의 촬영지로 유명한 런던의 포토벨로 마켓 같은 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장혁진 기자, 김지은(인하대 건축학) 인턴기자 analo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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