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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미루고 미루는 당신, 너무 완벽하려 마세요

중앙일보 2015.05.12 00:43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물건 주워오는 엄마, 벼락치기 하는 아들

01  걱정되기 때문에 강박 행동 되풀이



(불안한 30대 직장인) 30대 초반 미혼 남성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고민은 어머니가 요 근래에 자꾸 버려진 물건을 가지고 오신다는 겁니다. 버려진 물건을 자꾸 가져오는 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전에 말씀하셨죠. 제가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리니 맞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버린 물건을 계속 가져오십니다. 어머니는 2년 전에 이혼을 하셨고, 15년째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감정노동이 심한 텔레마케팅입니다. 60세가 가까워 지면서 갱년기까지 겪고 계시는 중입니다. 제 어머니께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리 답변 감사드립니다.



A (긴장 풀기엔 수다가 좋다는 윤 교수) 성격이 화끈하신 것 같습니다. 미리 답변 감사드린다고 하시니 말이죠. 사연에 어머님을 향한 소중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불편할 정도로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강박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강박 행동들이 있는데 손을 계속 씻는 사람도 있고, 외출해야 하는데 못 나가고 계속 가스가 잠겼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 읽고 지나간 것은 없나 확인하다 보니 책장 한 장 넘기기가 어려운 사람도 있고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 한 가지죠.



 사연의 어머니도 이성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불안 때문에 생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겁니다. 그 행동을 해야 불안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나쁜 녀석은 아닙니다. 불안이란 신호가 없으면 사람은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불안하기에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의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죠.



 어머니처럼 불안이 크다는 건 그만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셨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연을 보니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실히 사신 분이라 느껴집니다. 박수를 쳐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너무 불안하면 마음이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하루에 잠깐이라도 뇌에 나른한 여유의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생각보다 뇌에 여유를 주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에게 ‘여유를 갖자’ 말해도, 불안 엔진은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불안을 다스리려면 불안을 누르는 대신 불안과 친해져야 합니다. 스트레스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일 수도 있죠. 내가 존재하기에 내 주변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고 상대방이 보낸 신호와 자극이 내 몸에 이를 때 우리는 반응하게 됩니다. 그 반응의 느낌이 강할 때 스트레스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극을 처리하는데 우리 몸의 자원을 많이 활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적정 스트레스 이론은 스트레스가 적당할 때 우리 몸의 반응이 가장 효율적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적당히 스트레스를 느껴야 공부 효율이 최대로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지나치면 스트레스가 만드는 불안을 처리하는데 뇌가 힘을 너무 써 공부 효율은 떨어지게 됩니다.



 불안 대처 전략 1번은 불안과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불안을 의지의 힘으로 누르면 용수철처럼 더 튀어 나옵니다. 어린 아이들이 더 놀겠다고 떼쓸 때 야단치면, 아이는 더 울고 더 못 자는 것처럼 말이죠. 모른 체하고 자는 시늉을 하면 아이들은 보채다가 잠이 듭니다. 불안은 원초적인 감정이라 아이처럼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 대처 전략 2번은 불안을 무시하고 내 뇌를 중립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요즘 말로 ‘멍 때리는’ 연습을 하는 거죠. 멍 때린다는 것은 뇌가 특정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이완 상태로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뇌의 충전장치가 작동합니다. 그래서 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차 오르면 자연스럽게 불안도 줄어듭니다.



 봄날을 즐기며 파란 하늘을 보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명상·요가도 좋습니다. 좋은 사람과 실컷 수다를 떠는 것도 방법입니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다면 과거의 좋은 추억이 담긴 곳을 찾아가 그 추억을 다시 느끼면서 내 뇌의 과거 기억을 따스하게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되죠.



 불안하든 말든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불안 대처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02  잘하려다 보니 ‘덜덜덜’ ‘미적미적’



Q
 어머니의 불안 유전자를 저도 물려 받은 걸까요. 저도 사실은 걱정과 불안 때문에 고민스럽습니다. 제가 답답한 것은 일상 업무에 불안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그로 인해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밀린 일을 끝까지 가서야 모두 해치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시간이 충분할 때 시작했더라면 좋은 결과를 낼 텐데 왜 이렇게 계속 미루다 마지막에 가서야 할까라는 자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너무 지치게 됩니다.



A 불안과 관련된 고민이 많습니다. 현대 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하는데 피로 사회는 곧 불안 사회입니다.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 에너지로 불안을 활용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뇌가 지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아, 너 그렇게 공부 안 해서 나중에 뭐할래’란 말로 불안을 증가시켜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불안으로 계속 자극하면 변화의 동기가 오히려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일을 미루게 되는 것은 불안을 동기 삼아 일하는 걸 우리 속마음이 점점 싫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날 몰아세우면 내 생존에 중요한 문제인가보다 속마음이 받아들여 처음에는 움직이지만 매번 큰일 난 것처럼 그러면 불안이 양치기 소년이 되어 마음이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지금 위기 상황이야’라고 불안이 경고를 보내도 ‘몰라, 배째’ 이렇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정말 안 하면 안 될 순간에 가서야 불안이 극도로 폭발하면서 일을 하게 됩니다. 불안을 동기로 일을 하다 보면 모든 일상이 통증이고 피로 증상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불안과 완벽은 절친입니다. 완벽을 추구하기에 불안한 것이죠. 그러나 완벽에 대한 집착이 주는 과도한 불안은 오히려 결과물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완벽의 반대말은 수용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엔 내가 열심히 하면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숨어 있죠.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인생의 한계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 수용입니다.



 조정과 수용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수용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억지로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수용이 아니고 또 다른 조정 전략입니다. 인생을 흘러가는 강물처럼 물끄러미 쳐다보는 여유를 갖는 것이 수용입니다. 수용은 삶에 대한 철학적 성숙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 주지요. 그러나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고 꾸준히 좋은 사람, 자연, 그리고 문화와 내 마음을 연결해야 수용이란 마음 변화가 자연스럽게 찾아 오게 됩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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