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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서 17개 국어 술술 … 은행들 뜨거운 ‘외국인 러브콜’

중앙일보 2015.05.12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외국인에게 상품 설명을 하는 KB국민은행 직원.
경기도 안산시 우리은행 원곡동 지점은 일요일인 10일에도 문을 열었다. 오전 10시 문을 연 직후부터 고객들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대기 줄이 건물 밖까지 길게 이어졌다. 김장원(43) 지점장은 “평일에 은행에 들를 짬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영업을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 밀집 지역인 원곡동에는 우리은행 뿐 아니라 신한·하나·국민 등 주요 시중은행들도 앞다퉈 특화점포를 열었다. 인터넷·모바일 뱅킹에 밀려 은행 지점이 통·폐합되고 있는 다른 지역과는 사정이 딴 판이다.


유커, 기업 임원, 동남아 근로자
틈새 아닌 알짜 고객으로 떠올라
환율 우대 기본, VIP는 공짜 여행
제주도선 유커에 투자이민 상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향한 은행들의 러브콜이 뜨겁다. 은행권의 외국인 고객 수는 이미 5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주요 시중은행 7곳(신한, 국민, 우리, 하나, 외환, 농협, 기업)의 외국인 고객 숫자를 합하니 563만2812명이었다. 남한 인구 수(5100만명)의 10분의 1 규모다. 물론 한 외국인이 여러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중복 계산된 숫자다. 하지만 이 정도면 단순한 ‘틈새시장’ 수준 이상이라는 게 은행들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2013년 말 497만명에서 1년새 66만명 가량이 늘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취업·결혼·유학·관광 등 다양한 목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늘면서다. 수익성 둔화에 해외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은행들로선 한마디로 ‘한국내 해외 시장’인 셈이다. 한 시중은행 마케팅부장은 “외국인 고객 수를 의미있게 집계해 관리하기 시작한 게 불과 5년 전 일인데 어느새 놓칠 수 없는 알짜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을 이용하는 외국인 고객은 크게 세 부류다. 가장 덩치가 큰 건 동남아 지역 출신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국내 외국인 취업자(85만 2000여명) 중 제조업 분야 종사자가 41만800명에 달한다. 돈 벌러 한국에 온 이들은 정기적으로 고국으로 송금을 한다. ‘자투리 송금’이지만 일단 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면 예금·카드 등 수익성 높은 상품을 팔 수 있다. 은행들이 앞다퉈 수수료·환율 우대를 내거는 건 그래서다. 농협은행은 현지 은행과 제휴를 맺어 필리핀 전 지역 송금액 2000달러까지 수수료를 1만원만 받는다. 미화 1000달러 이상을 자동이체하면 송금 수수료를 최고 절반 가량(45.3%)까지 할인해 준다. 기업은행은 ‘국내보수 일괄송금’ 서비스를 한다. 여러 외국인 근로자들의 월급을 한꺼번에 해외 송금하려는 사업주의 수고를 대신해주는 상품이다.



 기업 임원이나 전문직 등 외국인 ‘큰 손’을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외환은행은 2012년부터 외국인 VIP들을 초청해 템플스테이 체험 기회를 주고 있다. 지난달 충북 속리산 법주사에서 1박2일강 다도(茶道)학습, 108배, 숲속 걷기 명상 등을 진행했다. 참가자 쿠도 히데카즈(일본)씨는 “한국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배우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소니코리아의 재무담당 부사장(CFO)이다. 신한은행은 2011년 8월부터 본점에 ‘외국고객부’를 신설하고 40개 영업점에서 외국인 전용창구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한남동과 대기업(삼성) 중심으로 전문직 외국인을 위한 ‘우리글로벌 데스크’ 6곳을 운영 중이다.



 최근 새로 뜨고 있는 시장은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다. 이들을 잡기 위한 맞춤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노벨티(중국어 통장지갑)’ 상품을 내놨다. 하나은행은 아예 알리페이와 손잡고 결제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제주도에는 우리은행이 지난해 6월 문을 연 ‘중국고객 데스크’가 있다. 중국어에 능통한 전담팀이 상주하며 부동산 구입, 투자이민제 상담을 하고 있다. 금융거래 노출을 꺼리는 중국인 성향을 반영해 외부에서 전용창구로 이어지는 별도 출입문, 현지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세미나실도 갖춰놨다.



 외국인 파워는 은행의 자동화 기기(ATM)의 모습도 바꿔놓고 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은행 창구를 찾기보다 자동화기기나 인터넷 등 간접채널을 선호하는 외국인 특성 때문이다. 은행마다 8개~17개 국어 음성 지원이 되는 ATM을 들였다. 환전 없이 미화가 입출금되는 ‘달러 ATM’과 태블릿 PC를 이용한 출장 상담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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