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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의심의 씨앗과 긍정의 강속구

중앙일보 2015.05.12 00:03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종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콘텐트 본부장
박찬호 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때 이야기다. 위기 상황에서 타임을 걸고 포수와 이야기를 하는데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타석에 있는) 저 친구 약점이 ○○○야. 그걸 던져.”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을 받는 수퍼스타지만 배터리 사이에 끼어든 느닷없는 훈수였다. 박찬호는 순간 멈칫했다. “뭐 하자는 거지? 왜 나서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승부구에 대한 갈등이 시작됐다. “그래? 저걸 던져봐?”라는. 자신이 생각한 구종과 달랐다. 박찬호는 자신과 포수가 처음 의도한 대로 승부를 걸었다. 그렇지만 뭔가 찜찜했다. 의심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결과는 타자에게 한 방 얻어맞았다고 그는 기억했다.



 의심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다. 특정 타자의 타구 방향 통계를 분석해 수비수의 위치를 옮기는 시프트(Shift)에 대해서다. 빅 데이터를 이용한 과학적 분석에 뿌리를 뒀지만 실제로는 타자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심리전술이라는 게 선수나 현장 지도자의 생각이다. 한쪽으로 촘촘히 그물망을 친 수비진에게 몇 번 잡히고 나면 타자들이 타법 등 자기 방식에 대해 물음표를 달게 된다는 설명이다. 더 세게 치거나 타구 방향을 의식적으로 바꾸려는 과정에서 밸런스가 무너져 슬럼프에 빠지는 악순환을 맞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시프트를 잘 쓰지 않는 어느 지도자는 투수의 의심이라는 관점에서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팀 동료 수비수가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타구가 시프트로 안타가 되면 예민한 투수들은 그 공 하나로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져요. 동료와 코칭스태프의 판단에 의심과 불만이 생기면 시프트의 성공보다 손해가 더 크다고 봐요.”



 세상을 살다 보면 옆에서 이런저런 소리에 귀가 얇아지고 쏠리는 경우가 많다. 어디선가 날아온 의심의 씨앗은 마음을 흔들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혹시 박찬호는 그때 로드리게스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어떤 공을 던질까 다시 따져 봤어요. 내가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의심스러웠어요. 제 공을 100% 믿지 않은 게 실수였죠. 믿고 던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볼 끝이 달라져요.” 우리 팀 전지훈련지에서 젊은 투수들에게 소개한 그의 경험담이다.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도 그냥 빠르기만 한 밋밋한 공인지, 강력한 구위가 실려 꿈틀거리는 공인지 마음 쓰기에 달려 있다는 게 대투수 출신의 설명이다. 신뢰를 좀먹고 분열시키는 의심의 시대를 긍정의 강속구로 날려버리고 싶은 요즘이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콘텐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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