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e New York Times] 정치건 예술이건 ‘세습’이 잘나가는 이유

중앙일보 2015.05.12 00:03 종합 33면 지면보기
데이비드 브룩스
칼럼니스트
미국인들은 당혹스럽다. 지난 35년간 부시나 클린턴의 이름이 대통령 투표용지에 오르지 않은 선거는 두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년 대선엔 두 이름 다 투표용지에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두고 ‘볼썽 사납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괜찮다’는 이보다 8배나 많은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집계됐다.



 그러나 불쾌감을 표한 이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토머스 홉스 이래 우리는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된다”는 허상 속에 살아왔다. 공정한 경쟁은 알몸뚱이 개인들 간에 이뤄져야지, 어느 한쪽이 가족이란 ‘백’을 업고 링에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자님 말씀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사회는 없다. 개인은 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가족과 집단이란 배경을 업고 나온다. 사회를 이루는 알짜 단위는 가족과 집단이다. 이들이 공공의 삶을 결정해왔다. 전 세계 기업의 90%가 가족 경영이란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만 해도 가족 기업의 성과가 더 좋다. 특히 설립자가 생존한 기업일수록 순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주 국가인 미국에도 늘 ‘왕가’가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역대 45명의 대통령 가운데 아버지나 남편을 이어 백악관을 차지한 경우가 10명으로 늘어난다. 상원도 마찬가지다. 상원의원 아들이 상원의원에 당선될 가능성은 일반 남성의 8500배에 달한다. 주지사도 비슷하다. 뉴욕에 쿠오모가(家)가 있다면 캘리포니아에는 브라운가가 있다.



지구촌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권력세습 현상이 오히려 늘어나는 걸 볼 수 있다. 필리핀엔 아키노가, 인도에는 네루·간디가 있다. 프랑스에도 르펜 가문이 있다. 여성의 권리 신장으로 아들뿐 아니라 딸까지 권력세습에 합류하면서 유력 가문의 인재풀이 두 배로 늘어났다. 그 결과 유력 가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증가했다.



‘왕가’로 불리는 유력 가문들이 왜 승승장구할까. 노골적으로 불공평한 이유가 있다. 강력한 핏줄의 힘과 탄탄한 돈줄이다.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은 아버지·형과 남편 덕에 늘 관심이 집중된다. 이들의 명성을 좇아 정치자금을 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물론 이런 정치인들이 반드시 좋은 대통령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정치 이외의 분야에선 핏줄이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음악에 바흐 가문이 있고 야구에는 그리피와 몰리나 가문이 있다. 문학에는 브론테 자매나 뒤마 가문이 있다. 평범한 집안 출신 사람들은 이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불공평한 삶을 산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 대를 이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사회 전체를 진보시킨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필요가 있다.



 유력 가문 출신이 대를 이어 성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직업적 정체성이 효율적으로 형성된다.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음악가로 여기며 남달리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맬컴 글래드웰이 성공의 조건으로 꼽은 ‘1만 시간 연습의 법칙’을 이른 나이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성공에 필요한 알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이런 지식은 학교나 책에서 배울 수 없고, 부모가 하는 일을 곁눈질하며 습득되는 법이다. 상원의원을 지낸 여걸 낸시 카세바움은 역시 정치가였던 아버지 앨프 랜던이 선거 전략을 짜고 당선 사례를 하러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이런 경험을 하며 큰 아이는 정치공학의 작동원리에 본능적인 ‘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습득한 기술의 수준이 일반인보다 높다.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은 성공에 이르려면 3세대가 걸린다고 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어휘력이나 논리력·공감능력 같은 교직에 필요한 자질을 연마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조부모부터 교사를 해온 집안이라면 그런 능력이 세대를 걸쳐 농축될 수 있다. 여러분도 자신의 직업에 도움이 된 요소들이 어디에서 발원했는지 따져보면 조부모대까지 올라갈 사람이 많을 것이다.



 넷째, 남다른 배짱이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이는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다. 그러나 케네디나 부시 가문에서 자란 아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다섯째, 미래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가족 경영 기업이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건 이유가 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결의로 목표를 멀리 잡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가족이 기본인 인간사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좋은 부모나 배우자를 만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실력이 아니라 가문의 ‘백’으로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는 건 안 된다. 하지만 가족의 영향이 전혀 없는 사회는 없다. 그런 사회에서 살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