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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유준상의 눈빛

중앙일보 2015.05.11 05:01


















몇 주 전 야근 후 택시를 탔다. 정류장에서 대기하는 택시의 문을 연 순간, 택시 기사가 화들짝 놀란다. 나쁜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놀라는 모습에 덩달아 놀랐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물었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TV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노라 답한다. 그리고 소리만 들을 테니 DMB를 켜놓고 가면 안되겠냐고 양해를 구한다. 손님 오는 줄 모르고 드라마에 빠져 있던 그 마음이 오죽하겠나 싶어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 내내 불안했다.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다. 혼자 깔깔 웃으며 행복에 겨운 표정이다. 뭘 보나 했더니 택시기사가 보던 그 드라마다. 같이 보자고 한다. 들쭉날쭉한 퇴근 시간의 직장인인지라 드라마엔 본능적으로 마음이 잘 안 간다. 연속으로 이어봐야 한다고 연속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연속으로 볼 일 없는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니 웬만해선 눈길을 안주게 된다.



다음날, 취재 가는 중 후배가 난데없이 묻는다. 혹시 ‘풍문으로 들었소’란 드라마를 봤냐는 것이다. 지난밤 마지못해 택시와 집에서 잠깐 봤노라 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봐도 여간해선 드라마를 보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그 후배, 취재 가는 내내 드라마와 한 배우의 연기력을 홍보(?) 했다.



그 배우, 바로 유준상이다.



지난해, 만났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배우로서의 인터뷰였다.



당시, 같은 시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건의 인터뷰가 잡혔다. 하필이면 두 건 모두 시간 조정이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 한 건은 인터뷰 전에 먼저 사진을 찍고 이동, 그 다음 건은 인터뷰가 끝나기 전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다. 인터뷰의 핵심 주제와 그들의 속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사진의 메시지를 만드는 일. 사실 주제 파악 못하고 글 쓰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십상이다.



인터뷰 마치기 십분 전쯤 충무아트홀에 도착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배우 유준상의 얼굴과 옷차림을 볼 새도 없이 장소 헌팅과 조명 세팅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극장 관계자가 빈 연습실로 안내했다. 한쪽 벽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거울이 특이했다. 보통 연습실은 전면 거울로 이어져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연습실 거울의 반은 허리 높이에서 선반처럼 앞으로 30cm 정도 돌출돼 있다. 정면에서 보면 전면 거울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선반이 확연히 보이는 특이한 구조였다.



그 선반 뒤에 사람을 앉히고 측면에서 보면 얼굴은 제대로 보인다. 하지만 몸은 아래 거울에 반영되어 묘한 형태가 나타난다. 얼굴은 정상인데 다리가 넷인 괴상한 사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괴물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미지로 괜찮을 것 같았다. 유준상이 오기 전, 그 괴상한 그림을 내 맘속에 만들고 있었다.



조명 세팅이 끝나기도 전에 연습실로 유준상이 들어섰다. 마스크를 썼다. 그 마스크 위에 보이는 눈만으로도 병색이 완연하다.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혹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안됩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많이 아프신가 보죠?”



“예,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왔습니다만 많이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오기 전 아내가 인터뷰를 미루라고 하는데도 잡힌 약속을 미루는 게 예의가 아니라 왔습니다. 얼굴도 엉망입니다.”



공연 연습 막바지에 탈이 난 게다. 공연을 앞둔 배우들에겐 가장 민감한 시기다. 더구나 병색 완연한 얼굴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 게 적잖이 염려되었을 터다.



미리 구상한 사진의 이미지를 설명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사진의 메시지가 담길 거라 설명을 했다. 그리고 구상이 끝났으니 2~3분이면 충분할 거라고 했다. 일부러 확신에 찬 과장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실 구상한 대로만 사진이 찍힌다면야 금상첨화다. 하지만 사진 찍는 일엔 수많은 변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피사체와의 합심이다. 피사체의 건강이 최악인 상황, 걱정스럽지만 내색해선 안 된다. 차라리 과장된 확신으로 이 상황을 끌고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스크를 벗는다. 그냥 봐도 초췌함이 확연하다. 그가 자리에 앉았다. 조명을 강하게 다시 설정했다. 강한 대비로 얼굴의 초췌함을 가릴 심산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호흡을 가다듬고 카메라를 들었다. 첫 셔터를 눌렀다. 조명이 터졌다. 그 순간 유준상의 눈빛이 변했다. 눈빛이 살아났다. 아픈 사람은 온데 간데 없다. 눈빛으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광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눈빛의 부활이다.



이 사람, 진짜 배우다. 그날 카메라를 통해 본 유준상의 느낌은 딱 이랬다. 사진 촬영 후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스스로 상황을 끌고 온 게 아니라 그의 눈빛에 끌려와 있었다.



요즘 ‘풍문으로 들었소’를 곧잘 챙겨본다. 볼 때마다 그의 눈빛에 내 시선이 끌려 들어가 있다. 유준상의 눈빛이 보여주는 오묘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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