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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김 - 오히라 메모’… 진본 찾아야

중앙일보 2015.05.11 01:56 종합 7면 지면보기
오히라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신화’라는 말은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통찰이다. 1961년부터 65년까지 김종필(JP·63년 말부터는 공화당 의장) 중앙정보부장이 헤쳐나간 한·일 회담은 상당 부분이 잘못된 신화의 영역에 방치돼 있다. JP의 한·일 회담에 대한 증언은 지난달 27일 시작해 7회에 걸쳐 이어져 오늘 마무리됐다. 그의 증언은 한·일 회담의 진실을 되살렸다. 학계와 언론, 관료 사회의 게으름과 억측, 부실을 일깨워줬다.


한·일 회담 새롭게 밝혀진 진실

 ‘김종필-오히라 메모’가 문제다. 그것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처음부터 논쟁 없이 한국 사회에 수용됐다. 2005년 외교부는 3만5000쪽짜리 비밀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그중 2쪽짜리 A4 용지 맨 위에 영어 필기체로 ‘Top Secret’이라는 제목과 일본어로 대일 청구권(請求權) 자금의 액수와 조건이 적힌 서류가 끼어 있었다.



이 서류에 대해선 그저 ‘오히라 외상이 (김종필 정보부장에게) 각 문제 토의 때 설명한 별첨 메모’라는 애매한 표현이 붙어 있었다. 당시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서류를 사진과 함께 게재하면서 62년 11월 12일 김-오히라 회담에서 두 사람이 작성한 비밀 합의문서로 보도했다. 검증도 반론도 논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김-오히라 메모’가 아니다. JP는 이 문서를 보더니 “내가 모르는 서류”라고 일축했다. JP는 “나와 오히라 외상은 오히라 집무실에 있는 손바닥만 한 메모지를 한 장씩 뜯어 4시간 협상한 내용을 각각 썼다. 나는 한글과 한자로 썼다. 지금 나도는 2장짜리 서류는 회담 때 내가 쓴 것도, 오히라가 작성한 것도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단추는 어디서 잘못 끼워진 것일까. JP는 회담 이튿날인 11월 13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보고한 뒤 메모를 배석한 최덕신 외무부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최 장관이 이 문서를 외무부에 넘기지 않은 것인지, 넘겼는데 관리 소홀로 분실된 것인지, 아니면 외무부의 어두운 창고에서 아직도 ‘발견의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가 규명되어야 할 문제다.



 JP가 오히라와 협상하면서 “한·일 관계에 독도가 문제 된다면 폭파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이른바 ‘독도 폭파론’도 JP를 대일(對日) 굴욕외교의 주인공으로 몰아가기 위한 신화의 일부였다. 그는 오히라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자”고 제안하자 “그렇게 할 수 없다. 독도, 폭파하면 했지 당신네들한테 줄 수 없다”고 반박했다고 증언했다. 외교와 정치의 언어를 해독할 때 그 의도와 맥락을 생략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JP는 ‘독도 폭파’에 방점을 둔 게 아니라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도 밀약설’은 ‘한국과 일본이 독도를 미해결의 상태로 놔두기로 밀약문을 작성했다’는 소문이다. 밀약설은 밀약문서를 JP의 셋째 형인 김종락(작고)씨가 갖고 있다 불태웠던 것으로 ‘그럴듯함’을 더했다. 그러나 JP는 이번 증언에서 밀약설의 근거를 허물었다. “내가 종락 형님의 움직임을 잘 아는데 형님은 처음부터 그런 문서를 갖고 있지 않았다. 형님이 과장했다”고 말했다.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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