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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 동시’ 논란 10세 소녀 “시는 시일 뿐인데 진짜로 여겨”

중앙일보 2015.05.11 01:41 종합 10면 지면보기
잔혹 동시 논란을 빚은 ‘학원 가기 싫은 날’ 등 30여 편의 시가 담긴 시집 『솔로강아지』를 펴낸 이모(10)양이 입을 열었다. 지난달 30일 발간된 동시집 『솔로강아지』는 일부 작품이 폭력적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엄마를 씹어 먹어” 등의 표현과 삽화가 문제였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이양이 시집에 꼭 실어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한 시였다고 한다.


“어린이는 무서운 생각하면 안되나
이상의 시 오감도 정말 멋졌다”
어머니 “요즘 초등생 엽기에 익숙”
학부모들 “동시로 적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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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양은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무서운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시는 시일 뿐인데 진짜라고 받아들인 어른들이 많아 잔인하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양은 출판사 측이 시집을 전량 폐기하기로 한 상황에 대해 “처음에는 좀 그랬지만 지금은 괜찮다.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은 내게 시를 잘 쓴다고 하는데 저는 그다지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학교에서 공기놀이를 잘하는 사람으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이양의 어머니 김바다씨는 “처음에는 저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지만 아이 얘길 듣고 보니 요즘 유행하는 엽기물이나 괴담만화에 익숙해진 초등생들은 잔인하기보다는 재밌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며 “아이의 모든 작품이 이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집에 수록된 다른 시는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시 ‘솔로강아지’의 ‘외로움이 납작하다’는 구절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문학성이 뛰어난 시구”라는 평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꼬마의 시 세계가 매우 독특하다”며 “ 도덕의 인민재판을 여는 대신에 문학적 비평의 주제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시인인 어머니가 대신 써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어머니 김씨는 “모든 시는 아이가 9살 때 직접 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시는 가르쳐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는 연과 행의 개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미 동시집을 펴낸 오빠를 보고 본인도 시집을 내고 싶다고 해 “시집을 내려면 시가 여러 편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30편의 시를 써왔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양은 “내가 쓴 시 중에 강아지 순둥이가 나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그린 ‘순둥이의 응징’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눈 내리는 날’이라는 시는 ‘나니아 연대기’를 본 후에 썼고, ‘무궁화’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내 준 주제로 즉석에서 쓴 시라고 했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엄마가 읽던 이상의 ‘오감도’를 우연히 봤는데 ‘아해들’이 반복되는 장면이 정말 멋졌다”고 말했다. 잔혹 동시 논란 이후 억울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파퀴아오가 진짜 복서라고 생각하는데 언론에 메이웨더 팬으로 잘못 나간 게 가장 억울하다. 꼭 좀 고쳐달라”고 했다.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학부모 이모(37·여)씨는 “우리 아이가 저런 책을 읽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며 “아이들이 보면 심리적 충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 9살, 7살 자녀를 둔 양모(38)씨는 “또래 아이들이 읽는 동시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며 “전량 폐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한편 이양의 아버지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솔로강아지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한다”고 밝혔다. 그는 “ 일부 크리스천들이 이건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이라고 심한 우려를 표현하고 계신다”며 “크리스천으로 심사숙고한 결과, 더 이상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원치 않아 전량 폐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어린이가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자유롭게 얘기하게 하는 것은 문학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상업 시장에 출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책이 출판되면 책을 펴낸 당사자가 윤리적 책임이나 사회적 반향, 미학적 평가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이양이 각종 비난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출판사가 시적 표현을 그대로 그린 삽화를 넣어 논란을 더 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윤경·김민관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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