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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떡볶이 모양은 왜 다 똑같죠?” 길거리 음식을 디자인하라

중앙일보 2015.05.11 00:43 종합 23면 지면보기



식당을 요리하는 디자이너들









서울 중구 만리동. 서울역 고가도로가 출발하는 차로 옆은 ‘순대국 전문’을 내세운 기사식당이 즐비하다. 늦은 점심을 위해 잠시 멈춘 택시 사이로 푸른색 간판 VERY(베리)가 보인다. 식당은 독특한 풍모를 뽐낸다. 창문을 덮고 있는 녹슨 쇠창살과 푸른색 대문 그리고 화강암 벽돌로 두른 외벽까지. 1910년 무렵 완성돼 병원·출판사가 입주했던 건물이다.



 식당의 원래 명칭은 VERY STREET KITCHEN(이하 베리)이다. 올해 3월 문을 열었다. 외관만큼이나 음식도 평범함을 거부한다. 만리동 아롱사태덮밥, 타이베이 삼겹살찜, 니스 샐러드, 도쿄 ‘차슈라멘’ 등. 다양한 먹거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길거리 푸드’다. 스트리트 키친이란 가게명은 거기서 나왔다. 베리 이재원(42) 셰프는 “길거리 음식 하면 불신의 음식이란 생각이 강하다. 조리 과정이나 음식 상태나 믿지 못하는 부분이 컸다. 그런 불신을 신뢰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게 베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토요일은 점심부터 영업하고 일요일은 쉰다. 영업 시간만 봐도 돈 벌려고 창업한 가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베리의 대표인 디자이너 오준식(46)씨를 만나고 나서야 의문점이 풀렸다. 오 대표는 현대카드 디자인실과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및 디자인랩에서 디자인을 총괄했다. 오 대표를 포함해 식당 직원 대부분이 디자이너 출신이다. 이 셰프는 CJ 디자인센터 등에서 근무했고, 김진경(33·여) 셰프는 이노디자인과 현대카드 디자인랩을 거쳤다.



 오 대표는 음식을 소프트 산업(soft industry)이라고 정의한다. 음식과 디자인이 통하는 게 그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음식 풍경이 뭐냐고 물으면 만두 집에서 올라오는 하얀 증기라고 답할 수 있어요. 따끈따끈한 붕어빵, 학교 앞 천막 아래에서 먹던 떡볶이 등인 거죠. 길거리 음식은 그런 풍경을 담아내는 음식이고 접하기 쉬운 만큼 강력한 음식입니다. 훌륭한 디자인도 그런 거예요. 누구나 손쉽게 다가갈 수 있고 항상 곁에 두고 쓰는 그런 디자인이 훌륭한 디자인이에요.”



 디자인과 음식에 대한 오 대표의 설명을 듣고서도 디자이너 출신들이 뭉쳐 창업에 나선 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파스타와 떡볶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이탈리아 파스타는 흔히 먹는 국수 모양도 있지만 꼬아진 모양도 있고 다양해요. (파스타 모양을 다룬 책 한 권을 들어 보이며) 파스타 모양만을 주제로 책 한 권을 낼 정도로 수백 가지 종류가 있어요. 음식도 디자인적 요소가 중요합니다. 실제로 파스타는 산업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해요. 가장 흔한 길거리 음식인 떡볶이를 생각해 보세요. 떡 모양이 몇 가지나 떠오르세요. 떡볶이도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양한 종류의 떡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해보고 싶은 겁니다.”



 식당 ‘베리’는 일종의 실험실이다. 실험은 음식에 그치지 않고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과 문화까지 다시 디자인한다. 이곳은 일종의 기지인 셈이다. 식당 안에는 1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과 바(bar)에서 볼 수 있는 약간 높은 테이블·의자 등이 놓여 있다. 타원 테이블은 기성품이고, 걸터앉아야 하는 바 형태의 의자 등은 오 대표가 디자인했다. 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오 대표는 “타원 테이블은 어느 위치에 앉든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식당은 고가 옆이라 접근이 쉽지 않다. 요즘 뜨는 홍대나 이태원도 아니고 주차장도 없는 외딴 곳에 왜 식당을 냈을까? 디자이너의 시각은 조금 남달랐다.



 “만리동 서울역고가 옆 골목은 첨단이나 현대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서울의 중심이랄 수 있는 서울역을 끼고 있어요. 한국 대중식당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기사 식당들도 함께 있고요. 길거리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는 것 아닌가요. 이 주변이야말로 가장 ‘서울적’인 장소라 할 수 있어요. 고가에 공원이 조성되면 서울역 주변도 바뀔 겁니다.”(오준식 대표)



 다른 음식이 아닌 길거리 음식에 집중하는 건 길거리 음식이 가지고 있는 힘이 강력하다고 생각해서다. 김진경 셰프는 “격식을 차리고 먹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 아닌 그것과 차별화된 길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길거리 음식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만큼 문화적 색깔이 짙은 음식도 없다”고 덧붙였다. 세계 각국의 길거리 음식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지만 요리부터 먹는 방식까지 다시 만드는 ‘리디자인(redesign)’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원 셰프 등 식당 직원들은 지난달 부산에 있는 어묵 공장을 다녀왔다. 음식 재료를 찾기 위해서다. 서양 길거리 음식에서 소시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듯 어묵도 한국 길거리 음식 변형에 있어 중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봐서다. 이 셰프는 “어묵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길거리 음식 개발과 함께 숟가락과 포크 등도 자체 개발하는 게 앞으로 남은 과제다. ‘음식 디자인 실험실’ 베리의 연구는 막 첫걸음을 뗐다. 음식 개발 등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도전만큼은 의미가 있고 맛도 훌륭하다. 독특한 길거리 음식을 즐기고 싶은 피실험자(?)에게 베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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